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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투데이 窓]우리는 왜 애니메이션을 놓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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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을 제대로 봤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조짐을 알 수가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채 끝나지 않았을 때 '스즈메의 문단속'은 550만명, '퍼스트 슬램덩크'는 49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종이만화 원작 '퍼스트 슬램덩크'의 경우 단순한 복고현상이 아니라 10대와 20대도 열광했다. K콘텐츠가 주로 현실의 학원폭력에 집중할 때 '퍼스트 슬램덩크'는 고교생들의 꿈과 희망성취를 농구의 승부를 통해 공감토록 했다.

    그즈음 우리는 '아기상어'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한류현상을 일으킨 데 자부심을 느낄 뿐이었다. 즉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를 주목하지는 않았다. 이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주로 아이들이 보는 키즈콘텐츠라는 인식을 대변한다.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돌아온 2011년작 '마당을 나온 암탉'은 22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기록을 여전히 지키지만 속편은 아직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제작과정에서 매우 힘들었기에 후속작품조차 쉽지 않았는데 이는 열악한 애니메이션 제작환경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당시 아이들만이 아니라 부모, 직장인들에게까지 감동을 줬고 그 어느 애니메이션보다 세대 포괄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요즘 일본 가수들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그들 대부분이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불렀다는 사실도 간과한다.

    2025년 여름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글로벌 히트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소재와 배경, 문화적 기호는 물론 K팝을 포괄하니 말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다시 회자됐지만 단순히 우리 것을 뺏겼다는 불쾌감이 아니라 왜 우리가 놓쳤는가를 냉철히 분석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주요 기획사들은 K팝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는 짧은 콘텐츠를 좋아하므로 웹드라마나 숏폼 콘텐츠에 집중했다. 이러한 집중은 젊은 세대 사이의 광범위한 디깅(digging)컬처를 간과한 것이었다. 디깅컬처는 자신이 관심이 있으면 깊이 파고들어가는 문화현상을 일컫는다.

    한편으로 우리는 리얼리즘, 즉 사실주의 콘텐츠 문화가 매우 강하다. '올드보이'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은 모두 사실주의 콘텐츠고 상상력이 중요한 애니메이션조차 현실고증을 중시한다. 한국은 웹툰이 일본보다 낫다면서도 웹툰을 애니메이션이 아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 당연히 웹툰과 영상콘텐츠 사이엔 간극이 있기에 팬심을 잡기가 더 어렵고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데도 말이다.

    특히 Z세대의 특성을 간과했는데 그들은 리얼리즘 콘텐츠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신들이 공감할 장르라면 애니메이션으로도 코어팬덤을 형성하기 쉽다. 젊은 팬덤의 소비는 가늠할 수 없는데 넷플릭스는 미국 특허상표청에 '케데헌'의 상표권을 등록했고 그 범위는 가정용품은 물론이고 장난감, 스포츠용품, 의류, 나아가 유리제품까지 포괄했다. 의류에는 코스프레의상, 운동복, 수영복, 액세서리가 속한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파생 콘텐츠 사업을 하겠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두 편의 속편을 더해 3부작으로 만들고 뮤지컬까지 기획했기에 '겨울왕국' 이상의 콘텐츠 수익이 예상된다. 물론 '겨울왕국'보다 경제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강력한 K팝 팬덤이 있는 데다 에피소드 구축이 무궁하고 K팝 OST를 통한 음악콘텐츠의 다변화가 가능해서다.

    중요한 것은 팬심이다. 넷플릭스는 무조건 실험적인 작품이 아닌 팬심이 있는 장르에 대거 투자할 뿐이다. 여기서 애니메이션을 많이 거론했지만 K콘텐츠가 주목할 것은 바로 팬심의 향배라는 걸 재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팬심, 코로나19도 두려워하지 않고 극장으로 향한 그 마음들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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