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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물도 전기도 없는 '뫼끼' 오막살이... '북유럽 선진국' 핀란드의 불편한 휴가 [요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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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라플란드 키틸라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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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라플란드 키틸라 아에케누스호변 자작나무 숲속의 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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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라플란드 키틸라 오우나스강 수면에 일대 풍경의 반영이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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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자주 꼽힌다. 올해 3월 영국 옥스퍼드대 등이 발간한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WHR)' 국가별 행복 순위에 따르면 핀란드 사람들이 스스로 매긴 행복 점수가 147개국 중 가장 높았다. 2018년 이후 8년 연속 1위다.

    행복의 비결 중 하나는 특별한 여름휴가다. 이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향한다. 현대식 주택을 떠나 ‘뫼끼(Mökki·오두막)’라 부르는 숲속 작은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현지에서는 전 국민 5명 중 1명이 뫼끼를 소유해 ‘1가구 1뫼끼’라 할 정도로 보편적인 문화다. 뫼끼에선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뫼끼는 대부분 상하수도는 물론 전력 공급이 되지 않는다. 강이나 호수에서 물을 떠마시고 음식을 할 때는 모닥불을 피운다. TV나 휴대폰 등 전자 기기는 언감생심. 고립과 불편을 자처하는 핀란드인의 ‘뫼끼에라마(mökkielämä·오막살이)’를 체험하기 위해 핀란드 최북단 라플란드의 키틸라를 찾았다.

    자발적인 불편함에서 찾은 자연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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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진이 키틸라 아에케누스호를 건너 뫼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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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아에케누스호변의 뫼끼 안에서 바라본 숲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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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의 뫼끼 문화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20세기 이후 생겼다. 급격한 산업화로 일상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도시 외곽에 뫼끼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휴가 때만이라도 번잡한 도시를 뒤로하고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이들은 "모든 핀란드인은 전기와 이웃이 없는 외딴 오두막을 꿈꾸게 됐다"고 전한다. 별도의 상수시설이 없는 뫼끼는 물가에 위치한다. 핀란드 전역에는 18만8,000여 개의 호수와 657개의 강이 있다.

    기자는 10여 분간 배를 타고 키틸라 아에케누스호(Aakenusjarvi)를 건너 약 70㎡ 규모의 뫼끼에 도착했다. 뫼끼는 거실과 주방, 사우나로 구성돼 있다. 뫼끼의 화장실은 대부분 집 밖에서 재래식으로 사용한다. 욕조나 샤워 시설도 없다.

    뫼끼에서의 하루는 단순하다. 해가 뜨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면 하루가 시작된다. 현지인처럼 호수로 흘러가는 샘물을 투박한 표주박처럼 생긴 손잡이 달린 컵 ‘쿡사(kuksa)’로 한 모금 머금었다. 나뭇잎 등 부유물을 피해 깊게 떠야 한다. 깨끗한 수질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청량한 맛이 느껴졌다. 실제 핀란드는 미국 예일대 환경법·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수질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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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아에케누스호변 자작나무숲의 빌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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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아에케누스호변의 뫼끼에서 모닥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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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끼 인근에는 편의점이나 마트 등이 없다. 미리 챙겨가는 음식 외에 숲이나 강에서 양식을 구해야 한다. 라플란드 일대에는 야생 블루베리인 '빌베리'가 발에 치일 만큼 흔하다. 구름처럼 열리는 ‘클라우드베리’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두 베리 모두 7월부터 열매를 맺고 전자는 8월, 후자는 9월까지 수확할 수 있다. 그날 채집한 베리를 신선한 상태로 식사에 곁들이거나 잼과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 핀란드에서는 자연 속이라면 누구든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베리 등 야생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자연향유권’이 관습법적으로 보장된다. 이는 주인이 있는 사유지조차 예외가 아니다.

    불이 필요한 요리는 직접 모닥불을 피워야 한다. 장작불에 구워 불향 가득 입힌 고기와 생선, 반죽을 넓게 펴 구운 크레페, 햄, 감자를 즐겨 먹는다. 물고기는 근처 강가에서 직접 낚기도 한다.

    뫼끼의 즐길거리는 강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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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라플란드 키틸라 오우나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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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오우나스강의 잔잔한 수면이 카누의 경로를 따라 일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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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끼에서 필수적인 노동은 여기까지다.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자연을 즐기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누릴 수 있는 자연 체험 활동이 많다. 대표적으로 카누·카약 타기가 있다. 뫼끼는 대부분 오지에 지어지는 만큼 육로가 연결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카누와 카약을 이용해 이동하기도 한다.

    카누를 체험하기 위해 수상 활동을 하기 좋은 오우나스강(Ounasjoki)으로 향했다. 라플란드 서부 북단에서 남단까지 약 299㎞의 강은 핀란드에서 가장 긴 케미강(Kemijoki·550㎞)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핀란드는 수력발전용 댐 건설로 케미강의 자연이 훼손되자 오우나스강 전 구간에 댐을 비롯한 토목 개발을 금지했다. 오우나스강은 자연이 잘 보존돼 있어 현지에서는 '자연이 의도한 그대로 흐르는 강'으로 특별히 여긴다.

    오우나스강을 비롯한 핀란드의 강은 대부분 유속이 느리고 수심이 얕은 편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와 완만한 구릉으로 이뤄졌고 호수가 많아 물길이 퍼지는 덕이다. 초보도 쉽게 배를 조종할 수 있는 환경이다. 다만 물결이 치는 곳은 수면 아래 바위가 있어 부딪히면 배가 뒤집힐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기자도 카누를 탔다. 출발하자마자 카누가 바위에 올라타는 난관을 겪었지만 무념무상으로 노를 젓다 보니 금세 요령을 터득했다. 두 손 꽉 쥔 노에서 먼발치 풍경으로 눈을 돌리니 핀란드인들이 왜 ‘사서 고생’하는 휴가를 보내는지 깨달았다. 물결 없이 넓은 강에 푸른 하늘이 거울을 비춘 듯 수면에 담겼다. 강 유역을 따라 펼쳐진 숲의 풍경과 함께 일말의 잡념조차 사라졌다. 쉼 없이 저어야 하는 카누잉도 마음을 비우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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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나를 즐긴 후 키틸라 오우나스강의 차가운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현지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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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가옥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키틸라 새레스퇴니에미 미술관의 실외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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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누에서 한적한 오후를 보내고 돌아오면 사우나를 즐길 시간이다. 집집마다 사우나가 있을 정도로 핀란드인의 사우나 사랑은 유별나다. 뫼끼의 사우나와 도시의 사우나의 결정적 차이는 ‘사우나로 달궈진 몸을 어떻게 식히느냐’에 있다. 핀란드 사우나에서 뜨거운 증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를 단숨에 식혀줄 냉탕이다. 도시에서는 욕실에서 찬물 샤워를 하지만, 뫼끼에서는 차가운 강에 뛰어들어야 한다. 사우나에서 한껏 땀을 빼고 뼈가 시리게 찬 강물에서 수영하는 기억이 핀란드인의 ‘어릴 적 여름 추억’이다. 한국의 계곡 물놀이와 마당 등목과 비슷하달까.

    사우나를 하며 들은 ‘이맘때 수온은 15도 정도’라는 설명만으로는 물이 얼마나 찬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첫 발을 담그고서야 강물의 15도는 체감상 얼음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행한 다국적 취재진 6명 모두 간신히 몸을 담그는 것이 전부였다. 현지인들은 한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입수한다니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입수를 마치고 사우나로 돌아오니 현지 직원이 “최소 3번은 왕복해야 제대로 사우나를 한 것”이라며 친절히 안내했다. 두 번째 ‘냉탕’은 시원한 바람으로 갈음했다.

    천혜의 대자연, 라플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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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아에케누스호변의 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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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레비펠에서 바라본 일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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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플란드는 핀란드 국토 중 유일하게 북극권에 드는 지역이다. 지역의 3분의 1이 북극권 내에 위치한다. 척박한 기후 탓에 핀란드에서도 인구 밀도가 유독 낮은 편이다. 남한의 면적 3배에 달하는 핀란드(33만8,462㎞²)에 불과 563만 명이 거주하는데, 핀란드 국토 3분의 1을 차지하는 라플란드는 인구가 17만 명(1㎞²당 1.7명 거주)이다. 서울 인구 밀도의 1만 분의 1 수준이다.

    라플란드는 핀란드의 행정구역 명칭임과 동시에 인접국 스웨덴과 노르웨이, 러시아 등에 걸친 지명의 명칭이기도 하다. 지명은 북유럽 원주민인 ‘사미족’을 부르던 옛말인 ‘라프’와 ‘땅’이 합쳐져 ‘사미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한여름에 해가 지지 않고, 한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끝나는 8월 말부터는 오로라 관측도 가능하다. 신비한 자연 현상과 낮은 인구 밀도 덕에 ‘유럽에 남은 마지막 대자연’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자연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은 ‘펠’ 정상이다. 산보다 낮고 넓은 구릉을 지칭하는 지형이다. 높은 고도와 위도 탓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호수와 함께 핀란드를 상징한다. 라플란드 역시 주요 펠이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펠의 정상은 휑하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경이롭다. 빽빽한 자작나무, 소나무 숲과 틈틈이 들어선 호수가 끝없이 펼쳐진다. 산이 아닌 언덕이라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도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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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레비 스키 리조트에 출몰한 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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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 레비 스키 리조트에 출몰한 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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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을 찾아 이동하거나 오르다 보면 순록을 마주치기 쉽다. 관내 순록 개체수는 20만여 마리로 사람보다 순록이 더 많이 산다. 휴양지 호텔, 스키 리조트, 시내 마트, 차도, 보도 등 사람이 사는 곳에서도 태연하게 풀을 뜯는 순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라플란드 여행의 감초 같은 풍경이다.

    순록들이 사람에 개의치 않는 이유는 얼핏 야생동물처럼 보이지만 사람 손을 탔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모든 순록은 엄연히 주인이 있다. 대표 개체에 GPS 추적기까지 부착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자연과 인간의 균형적인 삶을 핀란드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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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틸라=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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