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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트럼프 관세 폭탄에도…"세계는 더 많은 중국산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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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사우스 신시장·EU로의 수출 오히려 늘어

    일대일로 통로 활용…아프리카 투자금 1년새 5배↑

    中 자금 댄 프로젝트 위해 中자재·장비 수입

    "美, 멕시코 등 동맹 압박해 요새 쌓기 급급"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전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중국 상품을 사들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9일(현지시간) “중국의 무역 체계를 약화시키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중국은 ‘최고의 약탈자’(chief-ripper-offer)”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이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미국을 제외한 세계 나머지 국가들은 ‘약탈당하는 것’(ripped off)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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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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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은 말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엔 별도의 고율 관세에 더해 펜타닐 원료 공급 책임을 물어 추가 관세까지 매겼다.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통로로 여겨지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협상에선 환적(transshipped) 관세 합의를 이끌어냈다. 유럽연합(EU)엔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압박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중국 고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일관된 계획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중국이 전날 발표한 세관 통계를 보면 지난 6~8월 중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미 수출은 25% 급감했고, 그 비중도 15%에서 10%로 축소했다. 대신 아프리카로의 수출이 33% 증가했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및 EU로의 수출도 각각 20%, 10% 확대했다.

    특히 EU의 경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비슷한 비중으로 중국산 상품을 수입했지만, 현재 EU는 미국보다 60% 이상 더 많은 중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이례적으로 중국·인도에 100% 관세를 부과토록 요구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명분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 차단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는 보복 관세로 미국에 맞서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프레임을 역이용해 중국을 ‘미국의 대안이 될 국가’로 포장하고 있다. 최근엔 EU와 인도, 동남아 및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까지 끌어들여 새로운 무역 질서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지난 1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방점을 찍었다. 시 주석은 당시 연설에서 참가국들에 “냉전적 사고방식과 (미국의 일방적인) 괴롭힘에 반대해야 한다”고 강력 촉구했다.

    중국산 수출 증가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이 2013년 출범한 ‘일대일로’를 통해 확고한 기반을 닦아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일대일로 속도는 더 빨라졌다고 짚었다.

    실제로 그리피스 아시아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대일로 활동은 사상 최대 규모로 1200억달러 이상의 신규 계약과 투자가 집행됐다. 이 가운데 거의 절반이 아프리카 내 중국 기업들의 대형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로, 총액이 300억달러가 넘는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5배 규모이며,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이러한 거래 자체가 중국과의 교역 증진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이 자금을 댄 철도, 발전 설비 등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산 재료와 장비를 수입하고, 중국산 무기로 수출 품목도 넓히는 식이다. 그 결과 지난 6~8월 나이지리아로의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50% 늘었다. 이집트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대일로 차관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금융 등 다른 측면에서도 진전을 보이고 있다. 케냐는 달러화 표시 중국 대출을 위안화로 전환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집트·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은 중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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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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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동시에 중국은 공급망 내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6~8월 태국과 베트남으로의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25% 늘었다. 전자제품과 기계류에서는 두 나라로의 수출이 무려 40% 이상 급증했다. 이는 새로운 관세에 대비한 ‘선출하’(front-loading) 현상을 반영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더 깊은 변화가 수면 아래에서 진행 중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아세안 역내 규정에 맞추기 위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으로 생산을 이전하고 있다. 이는 환적을 최소화하면서도, 중국 기업들의 무역 공급망 내 역할을 확고히 다질 수 있다.

    반면 미국가 가까운 멕시코는 5~7월 중국산 수입이 전년 동기대비 6% 줄었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지난 4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중국산 자동차, 섬유, 플라스틱에 대한 새로운 관세 계획을 발표했다. 현지 기업을 보호함과 동시에, 오래전부터 ‘북미 요새’(Fortress North America) 건설을 밀어온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요새는 결코 자신감을 뜻하지 않는다. 15세기 중국의 명 왕조는 내향적으로 전환해 무역을 억제하고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이는 국가의 활력을 고갈시키고 쇠퇴를 앞당겼다. 트럼프 대통령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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