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최고 형량
아들인 본부장에게도 15년 선고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는 23일 “범행으로 인한 결과가 매우 중하다”며 박 대표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박 대표는 작년 9월 구속 기소됐으나 올 2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이날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 대표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산재 사고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부과했던 경향과 산재의 빈번한 발생 현실에 비춰 보면 형벌의 예방 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과 같이 다수의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건에서조차 가벼운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
재판부는 이번 사고를 두고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라면서 “이면에는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의 현실과 일용직·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의 실태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사망한 피해자들이 평소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았더라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부분 피해자들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골든 타임을 놓쳤고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비상구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했다.
이 사고는 작년 6월 경기 화성에 있는 리튬 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했다. 전지 3만5000여 개가 연쇄 폭발해 작업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50여 명 중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당시 군납 리튬 전지의 납기를 맞추려고 무리하게 공장을 가동하다 나온 불량품이 화재의 원인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아리셀이 외국인 등 비숙련 근로자 53명을 불법 파견받아 공정에 투입하면서 안전 교육을 소홀히 했고 대피로도 확보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7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악의 대형 인명 사고”라며 박 대표에 대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박 본부장에 대해선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법정에서 “아리셀의 실질적 경영 책임자는 아들인 박 본부장”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대표는 피해자 유족들과 대부분 합의했으나 재판부는 “돈으로 합의해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합의한 사정은 일부 제한적으로만 고려한다”고 했다.
이날 판결에 대해 유족들은 “23명의 죽음에 비하면 (형량이) 너무 적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기업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이 우선한다는 점을 천명한 판결”이라며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는 사업주들에게 강력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영계에선 “기업 운영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한 산재가 발생하면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법원 판결이 나온 중대재해 사건 53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건 5건이었다. 형량은 징역 1~3년이었다.
산재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국무회의에서 “반복적인 산재를 막으려면 정말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원=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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