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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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열기로 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개입 의혹 청문회’에 대해 “청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일까?
천 처장은 24일 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결국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전합 판결의 재판 절차와 내용을 청문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로 보여진다.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국회가 관여하거나 조사할 수 없다는 국정감사조사법에 따라 청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전합 심리를 마치고 단 9일 만에 나온 판결로, 6·3 대선에 대법원이 작정하고 개입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재판 절차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지만, 천 처장은 ‘국회는 해당 사건 재판 절차를 따지고 물을 권한이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국회법엔 65년째 ‘대법원장 출석 요구’ 명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일단 국회 법사위의 ‘조희대 청문회’는 천 처장이 언급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 아니다. 국회법 제65조(청문회)는 ‘위원회는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증인 등으로부터 증언·진술을 청취하고 증거를 채택하기 위하여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국회법 제121조(국무위원 등의 출석 요구)는 ‘위원회는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질문하기 위하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또는 그 대리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국회법해설’(2024) 역시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하기 위하여 ①공청회와 청문회를 열고(국회법 65조) ②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과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감사원장 또는 그 대리인의 출석을 요구하며(국회법 121조) ③보고 또는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하고(국회법 128조) ④증인·감정인 또는 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으며 검증을 할 수 있다(국회법 129조)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국회의 대법원장 출석 요구는 국회법에 규정된 국회의 권한이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장을 국회에 부르는 행위 자체가 “삼권분립 사망”이라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입법부의 사법부 견제라는 삼권분립 원칙이 국회법에 구현된 것으로 봐야 한다.
국회법 개정 연혁을 보면, 국회의 대법원장 출석 요구 권한은 1960년 3차 헌법 개정(내각책임제·양원제)으로 국회법이 전면 개정될 때 처음 들어갔다. 1962년 5차 헌법 개정(대통령제·단원제) 이후에도 국회법에 그대로 남았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한 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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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로 대법원장, 국회 본회의 나와 민감한 현안에 의견 밝혀
대법원장이 국회에 나온 전례도 있다.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은 국회법에 대법원장 출석 요구 조항이 없을 때도 국회 본회의에 직접 나와 민감한 현안 등에 입장을 밝혔다. 1949년에는 법원조직법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고, 자신이 추천한 반민족행위조사위원회 특별재판부 재판관 선출이 보류되자 직접 이력을 설명했다. 1952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연임 개헌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소환운동에 대해 ‘의원 소환 법리와 절차가 없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정치권력(이승만)으로부터 재판 독립을 지켜낸 ‘예외적 대법원장’으로 현대 사법사에 기록됐다.
천대엽 처장 말처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해도 조희대 대법원장 조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회법해설’은 “일반적인 사법행정에 대한 국정감사 및 조사는 가능하지만 소송이 계속 중인 사건의 재판 내용과 관련되거나 법관의 소송 지휘·재판 절차를 대상으로 하는 국정감사 및 조사는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추가 해설을 통해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 입법 취지상 국회가 독자적인 진실규명, 정치적 책임 추궁, 의정자료 수집 등의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국정감사 및 조사를 진행한다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정감사 및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이 중인 사건이라도 사안의 성격에 따라 진실규명과 추궁 등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취지다.
국회에 증인 등으로 여러 차례 출석했던 한 법조인은 25일 “엄밀하게 말하면 이재명 대통령 사건은 조희대 대법원장에게는 진행 중인 사건이 아닌 이미 판결을 하고 끝낸 사건이다. 왜 무죄를 유죄로 바꿨느냐는 재판 내용에 대한 추궁이 아니라, 왜 그렇게 전례 없는 속도로 판결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회가 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 5월1일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생중계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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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보라는 판결문엔 ‘구구절절 변명’만
천 처장은 초고속으로 진행된 이 대통령 사건 재판 과정에 대해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 보충의견을 보면 상세히 나와 있다”고 했다. 판결문을 보면 될 일이지 굳이 대법원장이 국회에 나와 답변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A4 87쪽짜리 전합 판결 중 천 처장이 말한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3쪽 분량이다. 유죄 취지 다수의견에 섰던 서경환·신숙희·박영대·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이 썼다. 이들은 ‘우리가 왜 이렇게 서둘러 판결을 하게 됐는지’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심리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한 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분명히 밝혀 둔다”며 강변하는 듯한 보충의견을 썼다. 기존 대법원 어떤 판결문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재판 절차와 관련한 방어적 해명을 보충의견으로 낸 것이다. 의견보다는 해명, 해명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보충의견은 초고속 판결 근거로 ‘1심 6개월, 항소심 3개월, 상고심 3개월 내 선고’라는 공직선거법 사건 6·3·3 원칙을 거론했다. 애초 이 원칙은 당선자의 지위를 이른 시일 안에 확정해 유권자의 선택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이를 잘 아는 대법원이 재판 결과에 따라 당락이 바뀌지 않는 낙선자에게 기계적으로 이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보충의견은 또 미국 연방대법원의 2000년 대선 직후 재검표 사례를 초고속 판결 근거로 들었다. 이 역시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비교라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사례는 당해 선거의 당선자를 서둘러 확정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재명 대통령 사건은 이미 3년 전 패배로 끝난 대선 관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판례는 미국 내에서도 연방대법원이 대선에 개입한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샀다.
특히 보충의견은 국회가 따져 물을 의혹 지점은 모두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했다. “대법관들은 빠른 시기에 사실관계와 쟁점 파악에 착수” “지체 없이 제출 문서를 읽어보고 내용을 숙지” “입체적이고 심층적인 추가 검토를 집중적으로 진행” “절차를 주재하는 대법원장이 일일이 대법관들의 의견을 확인한 다음 후속 절차 진행”했다는 식이다. 판결문을 보면 의문 부호만 더 커지는 셈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불러 이 사건을 신속 처리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밟았고, 그 과정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당사자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법원 선고는 다수의견만이 법정의견이 되지만, 재판 절차에 대한 의구심까지 다수의견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 절차 등을 따지는 ‘조희대 청문회’ 필요성은 천 처장이 거론한 이 대통령 전합 판결문에도 담겨 있다.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원심 무죄 확정)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이 사건의 초고속 심리 과정 문제점을 A4 5쪽 분량으로 분명한 어조로 지적하고 있다. 두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심리 전에 소부에서 재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대법원이 유례없이 짧은 기간 내에 심리를 마무리하고 결론을 내놓게 되면서 법원의 공정성과 심리의 충실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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