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1주기인 지난 6월24일 오전 유가족들이 경기 화성시 서신면 참사 현장에서 추모제를 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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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화재참사로 파견노동자 등 26명을 숨지게 한 아리셀 대표이사 부자에게 지난 23일 나란히 징역 15년을 선고한 수원지법 재판부는 참사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불법파견’를 지목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노동자를 공급한 ‘파견사업주’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법파견과 피해자 사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6일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의 아리셀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화재로 숨진 노동자 23명 가운데 20명이 ‘불법’으로 파견된 노동자들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사망 자체도 중대한 결과이나 ‘파견노동자들’의 사망을 특별히 지적하는 이유는 그것이 파견법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가 실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노동자 파견을 금지한다. 그러나 아리셀은 파견허가를 받지 않은 한신다이아·메이셀에서 3년 가까이 이주노동자 등을 당일 수요에 따라 일용직 형태로 공급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아리셀 경영진은 “인력난과 수주 실적에 따라 인력 수요가 달라지므로 생산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 어려웠다. 이는 영세 제조업체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아리셀의 특수성 탓이 아니라 영세 제조업체 일반의 문제로 불법 파견노동자 사용이 불가피했다는 항변인 셈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시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화재 무렵 아리셀이 다수의 파견근로자를 공급받은 이유는 아리셀이 수주한 군납 전지의 품질 때문에 국방기술품질원으로부터 시정조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생산차질이 빚어졌으며, 다가오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급작스럽게 증가시켰기 때문”이라며 “결국 화재 피해자 대부분이 파견노동자들이 된 이유는 사회구조적인 측면보다 피고인들이 스스로 야기한 측면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아리셀은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쓰면서도, 안전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리튬 1차전지의 화재 위험성, 화재 시 대처방법, 탈출경로 등을 교육받았다고 한다면 전지의 폭발 직후 곧바로 외부로 대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거나 탈출이 가능한 비상구 방향으로 대피하는 등 사망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된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경영계가 줄기차게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 금지’에 대해서도 언급돼있다. “제조업 특성상 노동자가 각종 공정기술을 습득하고 전문적인 설비를 취급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숙련되지 못한 파견노동자가 업무의 내용이나 작업 환경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업무에 투입될 경우 사고가 발생하거나 작업의 안정성·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이번 화재도) 비숙련 파견노동자들을 다수 투입한 결과에서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이어 “정규직이 아닌 파견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잦은 인력교체가 있었던 이유로 안전보건교육과 소방훈련이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하므로 파견법이 금지하는 불법파견과 피해자들의 사망의 결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파견법상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 금지는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취지다.
‘아리셀 참사’ 1주기인 6월24일 오전 유가족들이 경기 화성시 서신면 참사 현장에서 추모제를 열어 화재 건물 앞에 도착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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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생한 산재 은폐 이유도 불법파견
아리셀 참사는 불법파견이 산재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발생한 산재를 은폐하는 유인이 됐음을 드러낸다. 한겨레가 아리셀 피해자 유족 대리인단을 통해 받은 공판기록을 보면, 정아무개씨가 운영하던 파견업체 한신다이아는 2021년 11월부터 노동자를 파견하면서 아리셀로부터 4대 보험료를 도급대금에 포함해 받고도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막상 2022년 2월 파견노동자가 손가락 끝이 절단되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자, 아리셀과 정씨는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노동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는 ‘공상처리’를 하기로 한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할 경우 추후 노동부에서 산업안전 감독이 나올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합의금 역시 산재보험료를 받았던 한신다이아가 아니라 아리셀이 부담하기로 했다. 이는 정씨가 “한신다이아에서 산재 처리를 할 경우, 사고발생 현장(아리셀)과 한신다이아 사업장 주소가 달라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실태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아리셀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산재처리에 수반되는 노동부 감사, 불법파견 적발가능성 등에 대해 보고 받고, 당장의 경제적 손실과 불법파견의 지속가능으로 인한 장기적인 인건비 절감 이익 등을 비교형량해 내린 경영상 판단”이라고 밝혔다.
재판부가 불법 파견사업주 정씨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것도 불법파견과 산재은폐라는 죄질이 나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을 받은 사업주(사용사업주)과 파견을 보낸 사업주(파견사업주) 모두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지만, 파견사업주는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유예 처분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정씨 역시 2015년 불법파견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재판부는 “정씨가 파견노동자들을 유해·위험한 작업장으로 파견하며 아무런 관리조처도 취하지 않아 파견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그대로 위험에 노출됐다”며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또다시 이 사건 범행에 이르러 결국 파견노동자들로 하여금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노동부, 불법파견 감독·처벌 적극 나서야”
사정이 이렇지만 산업단지를 비롯한 제조업 현장에서 불법파견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더불어민주당의원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노동부가 지난해 파견·사용업체와 사내하도급업체 577곳에 대해 근로감독을 했더니, 480곳에서 무려 2714건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독대상 업체 가운데 83%에서 위법 사실이 적발됐고 사업장 한 곳당 위법사항이 5.6건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불법파견으로 확인된 원청 사업장수는 49곳에 이른다. 그만큼 노동자 파견·사내하도급 사업장에 불법파견을 비롯한 노동관계법 위반이 만연했다는 뜻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유지해온 불법파견이 큰 참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사건이 바로 아리셀 참사”라며 “산업재해 예방은 구조적 원인 제거에서 시작되는 만큼, 노동부는 불법파견 감독과 처벌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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