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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금기 맞서 골방에서 광장으로… 수많은 ‘김지영’이 쓰고 읽었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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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대중화 10년, 독자의 사랑을 받고 시대를 기록한 책들의 제목을 모아 그래픽으로 만들었다. 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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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어느 날, ‘도란스 기획 총서’ 저자들은 회의를 하다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페미니스트’가 떠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15살 ‘김군’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말을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남기고 아이에스(IS·이슬람국가)에 합류한 사건 때문이었다. 공저자로 참여한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페미니즘이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때였는데 왜 10대 남자의 머릿속에 페미니즘이 가장 중요한 적이 되었을까 의아했고, 동시에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를 몰라서 검색을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그 직후 2015년 2월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남성 패션지에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글을 썼다. 젊은 여성들은 트위터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를 붙이는 해시태그 시위로 응전했다.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여성들은 포스트잇에 애도의 말을 써서 붙였다. 이 포스트잇은 영구 보존되었고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나무연필)이란 책으로도 출간됐다. ‘페미니즘 대중화’는 온·오프라인에서 언어의 폭발로 촉발됐다. 임윤희 나무연필 대표는 “당시 분위기는 페미니즘 책을 진열하고 공격당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매대에 올리기 어렵다’는 서점도 있었지만, 시간을 두고 점점 여성 독자들이 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꼭 10년 전인 2015년 9월, 문화이론전문지 ‘문화과학’에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페미니즘의 부상을 ‘페미니즘 리부트’로 명명하는 글을 썼고, 2017년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왔다. 미디어 연구와 문화비평의 장에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을 가늠해보는 의미에서, 기존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영화 용어 ‘리부트’에서 따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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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기 젊은 여성들은 무기로 쓰일 ‘언어’를 찾고, 목소리를 내면서 ‘발화’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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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용어에 대한 재의미화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권김 소장은 “지난 10년 페미니즘 물결 속에 나타난 곤경 등 여러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페미니즘 대중화’로 쓰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고은 문학평론가는 논문에서 이 시기를 대표하는 문화적 현상이 바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쓰고 함께 읽는 흐름”이라고 평가한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지난 10년 페미니즘 분야 누적 판매량 1위는 ‘입트페’(입이 트이는 페미니즘)로 알려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이민경, 2016)가 차지했다. 이 시기 젊은 여성들은 무기로 쓰일 ‘언어’를 찾고, 목소리를 내면서 ‘발화’했다. 이두루 봄알람 대표는 “지금까지 이 책이 6만9500부가 팔렸는데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그 뒤 ‘김지은입니다’ 같은 책들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봄알람은 지난 10년간 페미니즘 전문 출판사로 성장했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포워드(Fwd) 필자들은 최근 펴낸 단행본 ‘페미니스트 플래시백’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을 기념하는 연표에 ‘입트페’ 발간을 넣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민경이 제시한 성차별적 언어에 대한 반격 전략과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언제나 설명해줄 의무는 없다는 태도는 페미니즘 리부트 세대의 핵심적 정서이자 실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페미니즘 번역서들도 지난 10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5년 9월 초 출간된 게일 루빈의 ‘일탈’은 900쪽짜리 벽돌책이었던데다 내용도 상당히 급진적이었지만, 출간 2주 만에 초도 물량 1천부가 매진됐다. 관련 세미나엔 페미니즘 이론에 목마른 관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2016년 3월 발간된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는 5개월 만에 1만7천부가 팔렸고, 지난 10년 알라딘 페미니즘 분야 누적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우모페·창비)는 지난 10년간 약 8만부, ‘맨스플레인’이란 신조어를 만든 리베카 솔닛의 책은 지금까지 4만부를 찍었다.



    젊은 페미니스트 독자들은 한국의 출판계를 먹여 살렸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2030 여성들은 북펀딩에 참여했고 책을 사들였다. 페미니즘 대중화 덕분에 새로운 독서 인구가 유입되면서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서점계의 숨통을 틔웠다. 페미니즘의 부상으로 번역어나 용어가 바뀌기도 했다. 봄알람은 ‘부모’를 ‘모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폐경’을 ‘완경’, ‘자궁’을 ‘포궁’, ‘유모차’를 ‘유아차’로 쓰는 출판사나 작가들도 적지 않다.



    여러 고전도 절판됐다가 새 생명을 얻어 나왔다. 로즈마리 퍼트넘 통의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옛 제목 ‘페미니즘 사상’),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즈의 ‘에코페미니즘’, 도나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등이 다시 출간됐다. 현대의 고전도 탄생했다. 2008년 출간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이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2023년 나온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이 중요한 저작으로 번역·소개되었으며 독서 모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기후 위기, 생태 위기, 감염병 위기를 거치며 최유미, 김애령 등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해러웨이의 사상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20년 전인 2005년 처음 나온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은 2023년 발간된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과 함께 페미니즘 고전이자 현재성을 담은 책으로 여전히 널리 읽힌다. 이 책은 페미니즘 대중화 기간 동안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었으며, 올 초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꼽은 21세기 최고의 책 2위를 차지했다. 출판사 교양인의 한예원 대표는 “2005년부터 10년 동안 연간 1천부씩 나가다가 2015년부터 더 많이 나가면서 지금까지 6만부 가까이 팔렸다. 판매 부수보다 ‘페미니즘 교과서’처럼 읽히며 사회적 영향력이 큰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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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페미니즘 대중화’ 시기인 지난 10년 동안 사랑받았던 책들. ‘분홍을 좋아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이후 페미니즘 책에도 여러 빛깔의 분홍이 사용되었다. 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사진 각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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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대중화 기간 동안 판매나 수출 면에서 가장 큰 화제를 낳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그동안 이론과 아카데미즘의 틀에 갇혀 있던 페미니즘을 거리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곁으로 가져와 생생하게 풀어냈다는 평가”(김양선)를 받았다. 2016년 10월 출간된 이 소설은 2025년 9월까지 누적 판매량 140만부를 기록하며 이야기의 힘을 압도적으로 보여줬다. ‘김지영’은 성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히 이뤄지던 1982년에 태어났고 이에 공감한 수많은 지영과 자매들이 페미니즘 공부와 ‘독서 투쟁’을 거듭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소수자, 여성 혐오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기도 했다. 그 밖에도 문학판에서는 1990년대 대표적 여성 소설가인 양귀자의 1998년 작 장편 ‘모순’이 2013년 4월 쓰다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나온 뒤 2020년부터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했다. 결혼을 앞둔 25살 여성 안진진을 둘러싼 낭만적 사랑과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현실, 모녀 관계 등의 서사를 담아 세월을 뛰어넘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고은, 황석영 등 한국 문단 주류 남성 작가들의 수상을 애타게 기다렸던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것도 기록할 만한 일이다. 오혜진 평론가는 “지난 10년 한국의 여성문학과 퀴어문학은 젠더 민주주의를 가장 발 빠르게 반영하는 특수한 장르처럼 보이는데도 한강, 정보라, 박상영 등 소수자와 지워진 역사를 다루는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국내에서는 그저 수상에만 집중하며 한국 문학의 대표로만 호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장에서 10년 동안 여성, 소수자 목소리가 새로운 문학적 테마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독자가 개입해 바꿀 수 있는 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민주적으로 많은 사람이 진입하며 목소리를 내면서 한국 문학장이 다면화하고 활기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사회과학 분야의 이론적인 분석을 정교하게 펼친 국내서로는 여러 전문가들이 ‘도란스 기획 총서’(교양인)를 꼽는다. 이 책은 정희진, 권김현영, 루인, 한채윤 등 저자들이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와 같은 도발적이면서도 시의적절한 의제를 던져 페미니즘 담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젠더, 소수자,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전개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도 대학 등에서 꾸준히 교재로 쓰이고 있다. ‘미투의 정치학’과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은 일본어로도 번역됐다.



    교보문고의 자료를 보면, 2016년 여성학 분야 도서는 전년도에 견줘 356.6% 더 팔려나갔다. 같은 해 알라딘 역시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이 전년도 대비 215% 늘었다. 예스24의 경우 구매자들의 특성에서 독특한 측면이 나타나는데, 최근 10년간 페미니즘 도서 구매자 중 40대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29.5%를 차지했다. 알라딘의 경우에도 지난 10년 관련 도서 구매자의 성별·연령별 분포를 보면 30대와 40대 여성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젊은 여성’들만이 ‘페미니즘 출판 시대’에 합류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2018년 이후 서점에서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 자체는 줄어들지만, 페미니즘은 특정 학문이나 출판 분야를 넘어선 보편적인 언어가 되어 출판계와 독서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장르문학을 주로 다루는 출판사 황금가지 김준혁 주간은 “예전에는 남성이 쓰는 에스에프(SF)라든가 이야기 자체도 스릴러나 남성의 살인, 공포물 위주였지만 지금은 페미니즘을 담고 있느냐 아니냐가 책을 발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독자층이 대부분 20~30대 여성이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틀그라운드’ ‘원본 없는 판타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등 다수의 페미니즘 도서를 만들어온 강소영 편집자는 “페미니즘 대중화 현상과 함께 독자가 보이고 시장이 생기자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 없던 출판사들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책을 내게 되었고 그야말로 페미니즘은 ‘대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일간지에서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저자’로 계약이 이어졌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필자들의 등장은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강 편집자는 “이슬아, 이길보라, 하미나, 양다솔, 이다울 같은 90년대생 여성 작가를 배출한 어딘글방 등 글방 문화와 글쓰기 워크숍도 이 흐름을 도왔고 북토크, 강연, 독서 모임 등이 다채롭게 열리며 페미니즘 시장을 개척하려는 업계와 페미니즘 신간을 독파하려는 열정적인 독자를 서로 키웠다”고 말했다.



    동녘의 이정신 편집장은 은하선의 ‘이기적 섹스’(동녘, 2015)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이 책은 출간 열흘 만에 2쇄를 찍었다. 이 편집장은 “페미니즘 도서 판매의 여명기(?)에 출간해 시장의 종 다양성도 부족했고, 도서 시장 안에서 한 영역을 구축하지는 않았을 때라 마케터들도 고심했다. 이후 저자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저자의 목소리와 입장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어 기뻤다”고 회고했다. 지난 10년에 대해 그는 “페미니즘 책이라는 세계와 영역이 분명히 만들어졌다는 점은 참 기쁜 일이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보수 기독교 책과 여성학 책이 나란히 꽂혀 있던 벽면의 책장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10년은 어떤 면에서 아주 대단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판계의 페미니즘 주류화는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강소영 편집자는 “대중화와 시장주의가 페미니즘을 자기계발의 영역으로, 필연적으로 권리 다툼의 문제, ‘파이 나누기’로 끌고 갔다. 백래시 등 반페미니즘보다 괴로운 현상은 ‘쓰까’(여성 인권에 다른 권리를 섞었다는 뜻), ‘랟펨’(트랜스 배제 페미니즘 성향 그룹)이라는 멸칭이 대표하는 페미니즘 안의 분열과 단절”이라고 말했다. 오혜진 평론가는 “페미니즘 안에서도 보수주의 주장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로 득세했다. 트랜스젠더 배제 움직임이나 더 많은 부를 갖는 방식의 흐름이 생긴 것은 기존 가부장제와의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연구의 양적 팽창과 관심에 비추어볼 때 ‘학문적 주류’인 제도권 대학의 지원과 관심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여성철학자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여성운동이나 여성학계 내에서 여성주의 이론의 위상이 올라가고 학생들의 지적 욕구도 높아졌지만 여성학 또는 여성철학 전공자를 전임교수로 뽑을 의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여성학과 또는 협동과정이 줄어들고 비수도권의 여성학 연구 산실이던 계명대의 경우 여성학과가 폐과 위기에 처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많은 학생들이 좋은 연구를 해오고 있지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외부에서 혼자 공부하고 논문을 쓰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인문학, 융복합 연구에 대한 제도화가 국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나 공격에 따른 반동적인 공격은 정치적 문제로 불거졌다. 제도권 정치는 청년 남성의 지지를 얻고자 여성 혐오 정서와 담론을 재생산했다. 2019년부터 여성가족부와 민간이 함께 진행한 어린이 인권 교육 프로젝트 ‘나다움 어린이책’ 논란은 대표적인 ‘반젠더, 반페미니즘’ 백래시다. 2020년 8월 당시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조기성애화를 부추긴다’ ‘동성애 미화·조장’ 운운하며 시대착오적 주장을 했고, 여성가족부는 이 발언 하루 만에 7종의 책에 대한 회수를 결정했다. 여성계와 출판계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이후 비슷한 흐름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페미니즘 도서를 폐기하거나 학생들이 읽지 못하게 하면서 사실상 페미니즘 책이 ‘21세기의 금서’가 된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에서 오늘날 보수 세력과 독재 권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반젠더 이데올로기’라고 분석했다. 버틀러는 젠더가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될 때 검열과 학문의 폐지, 공공 집회 공간의 제한 등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우리 여성을 지키고 돌볼 것”이라며 ‘젠더’를 공격하는 트럼프의 미국과 페미니즘 도서를 검열하는 한국 사회에도 대입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역설적으로 이제는 젊은 여성의 극우화 또한 연구 의제가 되고 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페미니즘 리부트는 웹2.0 시대의 대중화 물결과 연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웹3.0 시대 온라인과 조합된 여성 극우화의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파가 너무 넓어지면서 페미니즘 담론도 안전과 처벌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었고 점점 대중적으로도 우경화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권김현영 소장은 “지난 10년 모든 사회운동이 패퇴하던 때, 봉기라는 차원으로 페미니즘이 부상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였다”고 돌아봤다. “신자유주의가 모든 사람들의 집단적 저항운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조건에서 페미니즘만 그 운동력을 유지하고 등장했다. 2024~2025년까지 응원봉으로 이어지는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젊은 여성 집단은 누구보다 집단적 저항을 같이 많이 해본 경험을 쌓아 올렸고, 그것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민주주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독서와 공부가 해방의 도구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많다고 생각하는 성찰적 지식으로서 ‘공부 태도’를 지니게 됐다. 이미 자신의 지식을 갖고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한 여자들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단행본 ‘페미니스트 플래시백’에서 20~30대 페미니스트 필자들은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나 인류학자 팀 잉골드의 ‘선’ 개념을 이용하면서 우연히 얽히고 매듭지어진 감각으로 페미니즘 대중화와 동시대성을 사유한다.



    “나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10년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가장 뜨거웠던 과거의 주요 이슈만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연대기식의 단선적인 흐름으로만 정리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처럼 동시대의 ‘주된 흐름’에 온전히 끼지 못하고 불화해온 감각들을 함께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이다은)



    ‘페미니즘 리부트’ 또는 ‘페미니즘 대중화’ 등으로 일컬어지는 지난 10년의 기록과 기억에 대한 갈무리는 계속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 참고 문헌:



    정고은,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 페미니스트 독서/출판의 향방―여성 에세이를 중심으로’(2022)



    김양선, ‘페미니즘 리부트와 ‘김지영’ 현상- 조남주,『82년생 김지영』’(2017)



    김미정, ‘국경을 넘는 페미니즘과 얼굴없음의 정동 : 『82년생 김지영』 일본어 번역을 중심으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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