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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李 'END 구상'에 다시 불붙는 '두 국가론'… 남북 관계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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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두 국가론, '고차방정식' 해법은 있나>
    이재명 정부, '남북 두 국가론' 일부 수용 분위기
    北은 '적대적 두 국가'… 南은 '평화적 두 국가'
    韓정부 내 혼선도… 남북관계 해법 될지 미지수
    "현실 인정하고 공존부터" vs "통일은 물거품"


    한국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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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재명 대통령,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 )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이 자리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적대적' 남북 관계가 아닌 '평화적' 남북 관계를 추구하겠다고 천명했다.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며 이 대통령이 제시한 건 이른바 '엔드(END) 이니셔티브'다.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앞 글자를 딴 'END'(종결)라는 단어로써 '남북 간 적대와 대결의 시대 종식'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런 제안은 북한이 제시한 '두 국가론'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국가론은 한반도에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라는 2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설에서 이 대통령이 '북한 체제 존중', '흡수 통일 불가'를 선언한 건 최근 북한이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궁극적으로 얻으려 하는 '체제 안전 보장'을 사실상 인정해 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정부 부처도 발 빠르게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모양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5일 언론 간담회에서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 두 국가"라고 했다. 이어 "두 국가라는 것,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실용적 관점이고 유연하게 남북 관계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통일 포기'는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평화적 두 국가론'이 꼬일 대로 꼬인 남북 관계의 실타래를 풀 해법이 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최근 지속적으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며 '적대적 두 국가론'에 쐐기를 박았다. 남한만의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이 작지만은 않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 내 혼선도 있어 보인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 대통령 연설과 관련, 24일 미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며 "남북 관계는 통일이 될 때까지의 '잠정적 특수 관계'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과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진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남북 관계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 두 명이 두 국가론에 대해 엇갈린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이처럼 두 국가론은 좀처럼 다루기 쉽지 않은 '외교 고차방정식'이다. 반세기 이상이 지나도록 명쾌한 해답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남북 관계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 이론은 언제 처음 등장했고, 왜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지, 전문가들의 전망은 어떠한지 등을 살펴봤다.

    北, 70여 년 이어온 '통일 노선' 폐기… "적대적 두 국가"



    한국일보

    1992년 9월 17일 북한 평양에서 남한의 정원식(왼쪽) 국무총리와 북한의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남북 기본합의서 3개 분야 부속 합의서에 서명한 뒤, 문본을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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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국가론은 한반도에 '남과 북'이라는 2개의 독립된 국가가 실재한다는 이론이다. 남한은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 북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등을 포함한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을 발표했다. 남한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걸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공식화한 선언이었다. 다만 이때에도 북한을 '국가'로서 공인한 건 아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 이전까지 북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 '1민족 1국가 연방제통일' 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1973년 6·23 선언 당시에도 북한은 "'2개의 조선' 조작 책동"이라며 거세게 반대했다.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 동시 가입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두 국가로 인식된 후에도, 북한은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때 '두 국가' 체제에 반대했다. 해당 합의서에서 남북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됐는데, 이는 북한의 요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줄곧 '두 국가'를 반대하던 북한이 돌연 2023년 12월 '통일 노선'을 폐기했다. 북한은 이 시기를 전후로 한국을 일컫는 명칭을 '남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변경했다. 통일 관련 시설물도 철거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한과 영원히 단절하려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목표는 핵 보유국을 인정받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이 목표를 가장 방해하는 존재는 '비핵화'를 요구하는 남한이다. 그래서 원천적으로 한국을 북핵 이슈에서 완전히 차단시키겠다는 게 북한의 전략적 기조"라고 설명했다.

    "李 정부, 남북관계 개선 성과 위해 두 국가론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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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9월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남북 두 국가론'을 수용하자고 제안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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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두 국가론'은 지난해 9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통일, 하지 말자.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제안하며 '평화적 두 국가론'을 꺼내 들었다. 당시로선 워낙 파격적인 제안이었던 탓에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적 시선을 보냈다. "통일을 추구하는 헌법 정신을 포기하자는 것이냐"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 정부에서도 '두 국가론 수용' 방안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정부는 왜 정치권에선 금기나 다름없었던 두 국가 카드를 만지작대고 나선 걸까. 정치적 파장을 무릅쓴 '도박'에는 무언가 노림수가 담겨 있는 법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전 정권과의 차별화'가 꼽힌다. 윤석열 정부 시절 남북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낸다면, 이는 곧 '윤석열 정권의 과오를 바로잡았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재명 정부가 사실상) 두 국가론을 수용한 건 '성과 강박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정부는 남북 관계에서 원하는 목표가 있다. 현 정부는 윤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끊어졌던 남북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두 국가론'으로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점을 성과로 보여 주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반도는 북한 영토를 포함한 개념이기에, 만약 두 국가를 공식 인정한다면 '헌법 배치'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 북한 정권을 '불법적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한국의 기존 판례들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통일이 더 멀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을 개별 국가로 인정해 버리면, 훗날 북한 정권 붕괴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자연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진다. 중국·러시아 등 북한의 우방국이 체제 붕괴 중인 북한 문제에 개입할 때, 서로 다른 국가임을 선언한 남한이 이를 저지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제사회선 이미 두 국가" vs "평화적 두 국가? 비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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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원탁 착석자 중 왼쪽 네 번째) 통일부 장관이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북한의 2국가론과 남북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에 참석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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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국가론과 관련해선 전문가들의 견해도 갈린다. 우선 '실용적 남북 관계'를 강조하는 입장에선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두 국가론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단언했다. 임 교수는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국가로 인식하는 단계까지 왔다"며 "우리가 그것을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남북 관계를 되돌 수 없는 상황이라면 평화·공존 상태부터 우선 만들어 놓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화·공존의 단계를 바탕으로 점진적인 남북 관계 개선, 통일 등 다음 기회를 엿보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민 선임연구위원도 '현실론'을 들었다. 그는 "이미 남북 관계는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 상태였다. 오늘날 남북 관계가 악화한 상태에서 기존의 '특수 관계'로 북한을 규정하면 북한을 견인하기 어렵다. 현실에 맞게 효율을 따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국가 상태인 현실을 인정하면서 평화적 공존 관계로, 그리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반대로 한국 정부가 얘기하는 '평화적 두 국가'가 애초 비현실적인 개념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차두현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남한이 자신들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외친 상태다. 북한 논리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남북 관계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북한처럼 변하지 않는 이상 '평화적 두 국가론'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래 대립하는 제도·체제 간에는 주도권을 잡으려는 등 서로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속성이 있다. 즉 평화적 두 국가론을 받아들여도 남한의 제도가 북한에 영향을 주려 할 것이고, 북한은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따라서 남한이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인정해야만 '적대'가 해소될 수 있는데, 이는 통일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게 차 수석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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