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국회에서 열린 자민당-공명당 대표 회의에 일본 집권 자민당(LDP) 총재 다카이치 사나에(가운데)가 참석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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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집권 자민당과 26년만에 결별을 선언했다.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이 1999년 한배를 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이달 중순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지난 10일 오후 연립 유지를 놓고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진 뒤 “자민당과는 더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민당-공명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단 백지로 하고, 지금까지의 관계를 매듭짓겠다”고 했다.
또한 이달 20일 이후로 예상되는 국회의 총리 지명 선거에 있어서 공명당은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를 적지 않고, 자당 대표인 사이토 데쓰오에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공명당 “자민당의 헌금 규제 강화와 야스쿠니 심사 참배 등 바꿔야”
앞서 사이토 공명당 대표는 지난 7일 다카이치 총재와 만나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과거사 인식 문제, 배외주의(외국인 배척)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민당 파벌 비자금 개혁을 위한 기업·단체 정치자금 규제 등을 요구했다.
사이토 대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외국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이 있어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고 평가했으나, 정치자금 규제 문제에서는 양측 이견이 좁히지 않았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난 9일 도쿄에서 개최된 공명당 회의에서는 자민당과 기업·단체의 헌금(후원금) 규제 강화를 합의하지 않으면 연립 정권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의견이 연이어 제기됐다.
사이토 대표는 회의에서 “기업·단체 헌금 규제 강화와 관련해 (자민당으로부터) 충분한 회답이 없으면 총리 지명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라고 적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연립 정권 참여 여부에 관한 결정을 사이토 대표와 니시다 마코토 간사장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은 자민당 집행부가 교체되면 바로 연정 구성에 합의해 왔으나,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요구 사항을 공개하며 버텼다. 이달 총리직에 취임할 것으로 전망되는 다카이치 총재는 전날 NHK에 출연해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정책 합의 문서를 빨리 만들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명당의 정치자금 규제 요구에는 “당내에서 확실히 검토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민당은 공명당이 기업·단체 헌금 수령 가능 대상에서 지방의 일부 지부를 제외해 달라는 데 대해 불만을 품었고, 공명당은 다카이치 총재가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을 당 요직에 앉힌 것을 지속 비판했다.
10일 회의 후 사이토 공명당 대표는 자민당의 설명을 들은 뒤 “미흡해서 지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공명당의 대중 노선에 다카이치 총재가 부합하지 않는다” 의견도
일각에선 다카이치 총재의 극우적 성향이 공명당에게 ‘눈엣가시’로 평가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공명당이 바라는 일본의 대중 노선이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취임시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내부 평가가 나왔을 것이란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공명당은 일본과 중국의 관계 개선에 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명당의 뿌리 역할을 한 창가학회의 이케다 다이사쿠 명예회장부터 중일관계 문제 해결를 화두로 공명당의 초창기 입지를 다진 것으로 알려진다. 또 일본과 중국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공명당 대표단이 1971년 6월 최초로 중국을 방문해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한 바 역시 알려져 있다. 공명당은 중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복교 원칙을 정립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가 대중 강경책을 주장할 때, 공명당은 주로 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등 강경 보수 노선을 걷는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취임하는 것을 막아, 일본의 대중 외교 노선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공명당의 셈법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전망은?
자민당과 공명당은 1999년 오부치 게이조 당시 총리 때 연립을 한 뒤 25년 넘게 연립을 유지해왔다. 자민당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고 야당으로 지냈을 때도 두 정당은 연합을 유지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국회의원 선거 때 연합 공천을 해 당선 확률을 높였다. 창가학회를 모태로 둔 공명당은 전체 지지율을 높지 않지만 조직표가 있어 자민당도 선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연립 정권이 깨지면서 양당이 서로 타격을 크게 입을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짚었다.
10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국회에서,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와 니시다 마코토 공명당 간사장이 자민당의 신임 총재 다카이치 사나에와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를 만나 회담하고 있다. [교도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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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작년 10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자민당 지역구 의원 132명 중 25명이 낙선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경우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지역구 의원이 20명 더 당선돼 자민당을 앞섰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명당은 종교단체인 창가학회가 모체이며, 대부분의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고 창가학회 회원들에게 자민당 후보 투표를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구에서 이른바 ‘공명당 표’는 2만 표 정도여서 자민당 후보가 야당 후보와 접전일 경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공명당 입장에서도 자민당과 연정이 깨지면 일부 지역구에서 자민당 후보와 경쟁해야 해 의석수가 줄어들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양당의 골이 깊지만, (양측이) 연립 해소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데에는 사반세기에 걸친 국정 선거 협력 관계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정이 깨지면서 총리 지명선거 등이 치러질 임시국회가 이달 20일 이후 소집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다만 이달 26일부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정상 외교 일정이 이어져 24일 이전에는 새 총리가 선출될 것이란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총리 선출이 늦어질 경우 신임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이 내달 4일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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