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조희대 '침묵'에 고성만 쏟아내
당내에서도 "차분히 했어야" 비판
이진숙 출석 과방위, 낯 뜨거운 욕설
정쟁화로 국회 권위 스스로 무너뜨려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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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첫 국정 감사가 거대 여당 주도의 호통과 윽박지르기만 난무하는 '분풀이 국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임 행정부를 향한 실책을 파헤치고, 현 정부의 국정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점검해야 하는 국감의 본래 기능은 온데간데없이 여야 공히 상대 진영 때리기에만 골몰하며 정쟁을 부추기는 데 혈안이다. 국정운영 전반을 감시해야 할 국감이 정쟁의 무대로 변질되면서, 국회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국감 첫날부터 난장판을 면치 못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출석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는 14시간의 고성과 설전 끝에 자정이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까지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조 대법원장을 국회로 불러내 마주 앉았지만, 철저히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그를 압박할 전략은 고성 외에는 없었다. 조 대법원장은 국감의 시작과 끝에만 출석해 준비해 온 원고만 낭독하고 의원 질의에는 단 한 차례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국민적 의혹이 큰 사법부의 지난 대선 개입 의혹 등을 규명할 기회를 국회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사실상 빈손으로 끝난 법사위 국감 이후 민주당 강성파는 조 대법원장이 국회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조희대 책임론'을 키우기 위해 총공세를 폈다. 정청래 대표는 전날 밤 페이스북에 "조 대법원장은 비겁하고 오만했다.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침묵으로 버텼다"고 지적하며 "대법원장의 신뢰와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스스로 자격 상실당했다"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與 내부 "조희대 향한 질의 차분하지 못해" 반성도

13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 중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출연했던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인터뷰가 재생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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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도 수감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적발·시정하는 국감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는 못했다는 자성론도 나왔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14일 CBS 라디오에서 "(법사위가) 국민께서 궁금해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차분하게 해서 답변을 끌어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내란 혐의 재판장인 지귀연 판사 논란 등이 핵심인데 이를 파헤치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전날 친여 성향의 무소속 최혁진 의원이 조 대법원장 얼굴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합성한 '조요토미 희대요시' 피켓을 든 데 대해서도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놓고 압박하고 망신 주기를 했다는 프레임으로 갇히지 않겠는가"라고 비판하며 거리를 뒀다.

실제 법사위의 강공이 조 대법원장의 반성을 끌어내긴커녕 민주당에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한 의원은 "한 번에 제대로 급소를 공략해야 하는데 자꾸 찔러대기만 하는 모양새"라며 "이런 식으로는 조 대법원장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까지도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김병기 원내대표가 이날 처음으로 주재한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전날 대법원 국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 역시 법사위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 원내대표는 "어제 국감에서 민주당은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한미 관세 협상, 캄보디아 한국인 납치 범죄, 산업재해 근절 등 국익, 국민 삶과 직결된 현안을 꼼꼼히 점검했다"고 치켜세웠지만, 법사위 언급은 없었다.

강성파는 15일 대법원 현장 국감, '더 센 공세' 예고

민주당 지도부 내부의 반성에도, 분풀이 국감은 이어질 태세다. 당장 이날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출석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선 여야 의원들이 공방을 벌이다 서로 반말하며 욕설까지 하는 낯 뜨거운 장면이 연출됐다. 이 전 위원장은 이날도 자신의 면직과 체포 사태를 두고 거세게 반발했는데, 자신의 정치 체급을 높이는 자리로 국감을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조희대 침묵'을 꺾지 못한 법사위는 15일 대법원을 직접 찾아 현장 국감에 나선다. 법사위 소속인 서영교 의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국정감사에서 답변해서 대법원의 신뢰를 찾아가야 한다"며 더 강력한 공세를 예고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