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방송인 겸 피아니스트
오는 22일 마포아트센터 콘서트
인도주의, 사람의 감정 전하고파
독일 출신 방송인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린데만 [마포아트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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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독일에서 온 다니엘 린데만(40)은 외국인 방송인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다. 지금도 그가 처음 JTBC ‘비정상회담’에 처음 출연하던 때를 기억하는 대중이 적잖다. 단정한 외모와 따뜻한 태도, 놀랍도록 뛰어난 한국어 실력까지. 방송인 전현무는 함께 출연 중인 ‘톡파원25시’(JTBC)에 이르기까지 일찌감치 그에게 예능캐(예능 캐릭터)를 만들어줬다. 던지는 멘트마다 ‘재미없다’고 해서 붙은 별칭인 ‘노잼’의 아이콘.
“‘노잼’은 사실 최고로 편한 캐릭터예요. 억지로 웃겨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안 웃겨도 웃기고 웃겨도 웃기고요. 이 캐릭터가 생겨 저에겐 정말 다행이에요. 굉장히 즐기고 있어요. ”
실제로도 ‘재밌는 사람’은 아니란다. 스스로 “사실 좀 노잼이긴 하다”는 그는 “그렇다고 (방송에서 펼쳐보이는) 개그 노트는 없다”며 웃었다. 방송 전엔 캐릭터로의 몰입을 위해 ‘독일 개그’도 찾아본다. “정색하고 독일식 개그를 준비하는 그 상황이 전 또 너무 웃기더라고요. (웃음)”
방송에선 ‘노잼’이나, 음악은 ‘유잼’이다. 한국살이 17년 차, ‘N잡러’ 다니엘 린데만은 2017년 첫 앨범(‘Esperance’)을 시작으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지평을 넓혀왔다. 클래식, 뉴에이지 기반의 음악을 해오던 그가 요즘 푹 빠진 장르는 재즈. ‘자유로운 즉흥’이 핵심인 음악은 ‘정직한 노잼’의 아이콘과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최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다니엘 린데만은 “재치 있고 재밌게 연주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며 웃었다.
“음악도 하나의 언어…배울수록 소통 능력 커져”
워낙 말 잘하는 방송인으로 알려졌지만, 린데만의 삶은 늘 음악과 함께였다. 피아노를 처음 친 것은 열 살 때였다. 오르가니스트였던 할아버지와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막내 외삼촌 덕에 음악은 늘 가까이 있었다.
“고등학교 땐 오르간을 전공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당시 독일에선 천주교 신자가 줄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선생님께서 말리시더라고요. 그러다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하면서 중학교 때 독일에서 접했던 피아노곡의 주인공이었던 이루마 씨의 영상을 보며 음악의 꿈이 피어났어요.”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한창 바쁠 시기 린데만은 첫 앨범을 냈다. 당시를 떠올리며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끼로 만든 곡들”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음악이 태어나는 과정은 아기가 탄생하는 것과 같다”는 마음도 그때 처음 느꼈다. 방송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야외 음악회를 가진 독일 출신 방송인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린데만 [마포아트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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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서도 최대한 저다운 모습을 보이지만, 결과물은 편집의 과정을 거치잖아요. 음악은 정말로 제일 솔직한 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고 8년. 그는 “음악은 하면 할수록 겸손해진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칭찬을 달고 살았지만, 한 곡 한 곡 써 내려가고 연주할수록 테크닉, 템포에 있어 부족함을 느껴 공부를 거듭했다.
독학으로 파고든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은 그의 음악 언어를 확장해 준 조력자다. 두 사람은 ‘투 피아노(Two piano)’ 공연을 함께 하기도 했다. 린데만은 “(조)윤성 형을 통해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하나씩 언어를 늘려가고 있다”며 “아기가 엄마 말을 듣고 따라하는 것처럼 음악도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할수록 디테일이 강해진다”고 했다.
지난 8년간 그의 음악 작업은 왕성했다. 첫 앨범을 시작으로 2019년 ‘스토리’(Story) 이후로는 해마다 신곡이 꾸준히 나왔다. 2023년 결성한 다니엘 린데만 퀸텟은 올해 첫 정규앨범 ‘온 에어(On Air)’도 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분기점은 2022년으로 꼽는다. 한국인 아내를 처음 만났던 바닷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 나온 해다. ‘앤드 쉬 세드 익스큐즈 미(And She Said Excuse Me)’다. 그는 “피아노 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곡을 만들며 그때야 가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이 조금 잡혔다”고 했다.
린데만에게 음악은 모국어 다음으로 익숙해진 한국어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언어였다. 그는 “한국에서 살고 한국어를 쓰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아갈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며 “음악도 하나의 언어라, 하면 할수록 소통 능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그가 재즈에 빠진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포용력이 큰 장르인 재즈는 소통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다.
대다수는 방송을 통한 린데만의 모습을 주로 보지만, 공연계에서도 그는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연주는 물론 콘서트의 해설자로도 섭외 1순위다. 음악가로의 경험과 한국인보다 뛰어난 한국어 실력이 그를 무대로 세운다. 이달에만 총 5개의 공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의 ‘누구나 클래식’(10월 21일)에선 해설을, 마포아트센터의 ‘두 남자 이야기’에선 연주자로 관객과 만난다. 11, 12월에도 이미 공연 일정이 빼곡하다.
바리톤 우주호와 함께하는 ‘두 남자 이야기’는 더 특별한 무대다. 린데만이 작곡한 곡은 물론 독일과 한국의 음악 세계를 아우르는 곡이 연결고리처럼 이어진다. 슈만의 ‘헌정’과 린데만이 편곡한 ‘아리랑’을 연이어 배치한 것도 흥미롭다. 그는 “서로 다른 두 나라의 전통이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 자체로 문화의 다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멋진 음악보다 따뜻한 음악 지향…“마음이 없으면 텅 빈 음악”
린데만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홍콩 스타 청룽(성룡) 때문이었다. 청룽에게 빠져 ‘무술의 세계’에 눈을 떴고, 태권도를 배우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싶어 본 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처음 온 건 2008년. 처음 언어를 배울 땐 “하루에 단어를 30개씩 적어두고 문장을 만들어 크게 읽어봤다”고 한다. 이젠 머릿속에서 번역하는 과정 없이도 말이 술술 나온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어를 수집하며 ‘언어의 세계’를 늘려가는 것도 그의 취미생활 중 하나다.
“최근엔 ‘개취네쒜’라는 단어를 알게 됐어요. 외국에서 재채기한 뒤 건네는 ‘블레스 유(Bless you)’와 같은 의미의 말이 한국어에도 있더라고요. ‘재채기한 뒤 감기가 돌아오지 못하도록 액땜하는 소리’라는 뜻이에요. (웃음)”
17년의 한국 생활을 돌아보며 그는 격세지감이라 할 만큼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며 웃는다. 이전엔 한국 교포 친구들이 옷을 사러 왔는데 이젠 엄두도 못낸단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은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독일 출신 방송인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린데만 [마포아트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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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꾸고, 가정을 이룬 한국은 린데만에겐 제2의 고향과도 같다. 방송인이자 음악가로 다양한 길을 걷는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지 묻자, 고마움을 먼저 건넸다. 그는 “사실 전 이미 대한민국 사회에서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아 더 이루고 싶은 것은 없다”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고 했다.
다만 음악으로는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적 언어를 풀어내는 린데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음표로 되새겨진다. 그는 “독일어로 ‘aufhören’이라는 단어가 있다”며 “이 말은 언어 그대로는 ‘그만 듣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마지막으로 열려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삶에서 듣는 것이,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축한 단어예요. 그러니 음악을 허투루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의 음악은 다니엘 린데만이라는 사람 그 자체다. 그는 ‘멋진 음악가’이기 보다 ‘따뜻한 음악가’를 지향한다. 올곧은 길을 걸으며 건네는 선한 마음이 그가 만든 선율 위로 스민다.
“음악에 화려한 기술도 당연히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 안에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냥 텅 빈 음악일 거예요. 빅토르 위고는 ‘음악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한다’고 했어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제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적 가치관이에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사랑, 우정, 배려, 인간애와 같은 사람의 감정을 전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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