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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시위와 파업

    “극우 청년과 응원봉 시위대 가른 건 ‘생존주의’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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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에바 일루즈 프랑스 사회과학고등학교연구원(EHESS) 연구책임자가·문화사회학자(왼쪽 둘째)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5 아시아미래포럼 원탁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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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비상계엄 이후 반으로 갈라진 광장을 각각 메운 건 일명 ‘극우 세력’이라 불리우는 청년 남성 및 장·노년층과 ‘응원봉 시위’를 이끈 엠제트(MZ) 세대 여성 시민들이었다. 일견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이들 사이엔 한 가지 닮은 구석이 있다. 바로 분노, 두려움, 사랑 등 감정을 주된 동력 삼아 움직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을 가른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로 시대적 질서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생존주의’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혐오의 시대, 민주주의를 다시 묻다’란 주제로 원탁 토론이 진행됐다. 재단법인 와글 창립자인 이진순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사회학), 에바 일루즈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연구책임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김홍중 교수는 “노년층 중심 ‘태극기 부대’와 젊은 남성 중심 ‘온라인 극우주의’로 대표되는 국내 극우주의는 더는 일부만의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며, “이미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 ‘병리적 정상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를 넘나드는 극우주의 밑바닥에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한다고 진단했다. “한국전쟁과 냉전을 겪은 태극기 부대가 ‘반공 생존주의’를 체화했다면,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한 젊은 남성들은 신자유주의적 생존주의를 체화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민주주의 세력은 생존주의에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세대마다 차이가 있다. 김 교수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라는 승리를 경험해 낙관적인 586 세대와 달리, 최근 대두된 엠제트 세대 여성 시민들은 ‘세상이 끝났다’는 ‘비관주의’ 위에서 동물, 장애인 등 또 다른 약자들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생존주의에 맞선다는 점에서 ’비관주의적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희망이란 낙관주의보다는 비관주의에 더 가깝다”면서 “민주주의, 생태, 세계의 위기를 절감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움직여서 무언가를 이뤄내고, 응원봉과 시위 문화를 결합하는 창조력을 발휘하는 엠제트 세대 여성주의자들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 사이에 공유하는 감정의 종류보다 강도를 중시하는 풍토가 포퓰리즘과 맞닿아 있으며, 공론장과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왔다. 엄기호 교수는 “꼭 극우 세력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근 열리고 있는 국정감사를 보면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호통을 친다. 왜 그렇게 강도 높은 감정을 발신하는지 살펴보면,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과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걸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이어 혐중 시위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혐오의 밑바탕에도 비정상적으로 강도 높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리한다고 짚었다. 엄 교수는 “더 이상 희망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사다리가 끊어져 버린 사회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은 우리 모두를 ‘형제’라고 부르며 굉장히 강하게 결속시킨다”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에서 보았듯, 외국인과 이주민을 향한 혐오의 핵심은 결국 시민과 비시민을 갈라 누구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게 하는 데에 있다”고 경고했다.

    일루즈는 정의를 위해서는 판단이 요구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이를 불가능하게 한다며, “다른 인간을 나와 비슷한 인간, 즉 인류애적 형제로 보도록 돕는 ‘형제애’라는 감정이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데에는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좌파에 비해 우파가 형제애를 매개로 지지 세력을 성공적으로 결집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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