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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이슈 이태원 참사

    첫 방한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족 "오기 싫었지만… 진실 밝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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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초청 12개국 외국인 유족 46명 방한
    첫날 참사 현장 직접 방문하며 오열하고
    이튿날 추모 공간 들러 가족 사진에 눈물
    "진실 밝혀져야" 외국인 유족도 한목소리


    한국일보

    10·29 이태원 참사 카자흐스탄 국적 외국인 희생자 셰르니야조프 마디나의 동생 다미라가 26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을 찾아 언니의 사진을 벽에 걸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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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0월 29일 카자흐스탄의 셰르니야조프 다미라(35)는 믿기 어려운 비보를 들었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지인들의 한국 여행을 돕겠다며 한국으로 유학 간 언니 마디나가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핼러윈 축제에서 참변을 당했다고 했다. "처음엔 거짓말이거나 (사망자) 이름 착오겠거니 했어요."

    그렇게 3년간 멈춰진 시간 속에 살던 다미라는 26일 모친과 함께 서울 종로구 소재 이태원 참사 기억 소통 공간인 '별들의집'에 들러 벽면에 걸린 사진 속 마디나의 얼굴을 연신 매만졌다. 길고양이를 구조해 분양할 때까지 한국으로 갈 수 없다며 사고 두 달 전까지 출국을 미루던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자 다미라는 울먹였다. 어머니 굴바누는 "제 딸이, 제 심장이 여기 남을 수 있어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다미라 가족은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 초청으로 이란과 러시아, 일본 등 12개국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 44명과 함께 방한했다. 다미라는 통한의 공간인 이태원 참사 발생 골목 일대 지도를 직접 그려와 어머니와 함께 둘러봤다. 그는 한국일보와 만나 "사실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지만 한국을 많이 좋아했던 언니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어서 참고 왔다"고 했다.

    '별들의집' 벽면에는 7명을 제외하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미라 등 방한한 외국인 유족의 동의로 비어 있던 7곳에도 사진이 마저 채워졌다. 외국인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의 사진이 걸린 벽 앞에 서서 한참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한국일보

    26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국내외 유가족들이 서로 포옹하며 위로해주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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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들은 사진 속 얼굴을 쓰다듬거나 이마를 맞대는가 하면, 피붙이가 좋아하던 인형과 오토바이 모형을 놓아두기도 했다. 새로 걸린 희생자 7명 사진 아래에는 '변치 않는 사랑'이 꽃말인 보라색 리시안셔스가 한 송이씩 놓였다. 유가족들은 30분간 추모한 뒤 함께 사진을 바라보며 묵념했다.

    한국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외국인 유족들을 끌어안으며 따뜻하게 맞이했다. 외국인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해온 사정을 잘 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란 국적의 희생자 아파크 라스트 마네시의 어머니 자흐라는 "딸이 낯설고 너무 먼 나라에서 죽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딸의 사진을 들고 이동하는 한국 여성을 보고 감격해서 울었다"며 고마워했다. 같은 국적의 희생자 알리 파라칸드의 고모 마나즈도 "한국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머리를 깎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애쓰던 모습을 우리도 함께 봤다"며 "그 덕분에 저희가 여기에 모일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송해진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3년간 외국에서 혼자 그 시간을 견뎌왔을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며 "서로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외국인 유가족들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문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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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한의 땅을 밟은 외국인 유족들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유가족 6명은 전날 서울 중구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를 주제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 무대에 올라 "159명의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한 정의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호주 국적 희생자 그레이스 라쉐드의 어머니 조안은 "한국 정부의 안전 관련 책임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투명하게 진상을 규명할 책임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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