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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그 영화 어때] 애니 ‘체인소 맨: 레제편’의 박스오피스 1위가 이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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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62번째 레터화제의 애니메이션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입니다. 추석에 박스오피스 1위로 뛰어오르면서 추석 영화 소개하는 ‘그 영화 어때’ 156번째 레터에서 짧게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오늘은 좀 더 자세히 말씀드려볼게요. 흥행세가 이어지고 있다보니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신 듯 해서요. 제가 보기에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박스오피스 1위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작품입니다. ‘체인소 맨’은 전혀 모르지만 궁금은 하다, 도대체 어떤 애니이기에 그렇게 인기인지 알고 싶다, 이런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포인트 짚어보겠습니다. ‘체인소 맨’이라니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이야, 하셔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왜냐. 저도 시사회 가기 전까진 하나도 몰랐거든요. 그런 제가 지금은 체인소맨 스티커(정확하게는 체인소맨에 나오는 전기톱 악마인 귀여운 포치타)를 저의 소중한 노트북 한가운데 붙여두고 있답니다. 그럼, 전기톱 악마 스티커가 웃고 있는 노트북으로 작성한 오늘의 레터, 아래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레터에는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결말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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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새로 나온 포스터입니다. 기존 포스터는 체인소맨의 격투신을 내세웠는데 이번엔 마성의 소녀 레제를 전면 배치했네요. 현명한 선택으로 보입니다./소니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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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성적 먼저 보실까요. 누적 관객 255만237명으로 1위(26일 현재)입니다. 9월24일 2위로 개봉해 10월3일 3위로 떨어졌다가 10월11일 1위. 이후 16일 개봉한 ‘극장판 주술회전: 회옥·옥절’에 딱 하루 1위 자리를 내준 날 빼고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시사회장 들어갈 때까지 ‘체인소 맨’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귀칼’에 이어 국내 개봉하는 일본 애니라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었을뿐, 아는 건 TV판 애니의 메인 이미지 정도. ‘레제편’의 레제가 사람 이름인 줄도 몰랐습니다. 주인공 머리에서 튀어나온 전기톱하며, 양팔에 붙인 톱이며, 신체훼손 심하면 지켜보기 힘들어 어쩌나 생각 정도. 아무리 그래도 원작자가 ‘룩 백’ 작가(후지모토 타츠키)이니 뭔가 바탕에 흐르는 정서는 있겠지 짐작 정도. 그런데, 오호라. 다 보고 상영관을 나서는데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홍보 담당자분의 “어땠냐”는 질문에 바로 답이 튀어나왔습니다. “으와, 너무 재밌었어요. 오늘 안 봤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전 귀칼보다 이게 더 재밌는 거 같아요.”

    이후로 2번을 더 봤습니다. 시사회 때 몰라서 놓쳤는데 쿠키가 있다고 해서 1번 더 보고, 아무래도 아쉬워 1번 더 보고. 가능하면 4DX나 아이맥스에서 1번은 더 볼 예정입니다. 왜냐구요. 재밌으니까요. ‘체인소 맨’ 인기의 기본적인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고, 재미가 있게 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현 시점 관객이 뭘 좋아하고 뭘 보고 싶어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확실하게 보여줘요. 원작의 힘도 있지만, 영화로 옮기면서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저처럼 하나도 몰랐던 사람까지 포섭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증명해주죠. 무엇보다 다른 일본 애니들하고도 차별화되는 분명한 색깔이 있습니다. 흔히 소년만화로 통칭되는 계열이지만, 자기 세계가 뚜렷하거든요. 주인공 덴지 설정부터 그렇죠. 이 부분은 아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2019년부터 연재한 원작 만화가 있고(아직 연재 중), 이 만화를 바탕으로 한 TV애니메이션(1기)이 있는데, TV애니메이션이 넷플릭스와 왓챠 등에 올라와 있습니다. 12편인데 편당 20분정도로 짧아서 금방 보실 수 있어요. 12편 뒤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이번 극장판입니다. 극장판으론 첨 나왔어요.

    저는 극장판을 보고 TV애니를 찾아서 봤는데 확실히 좀 더 이해되는 부분이 있긴 했어요. 그래도 극장판 자체로도 기승전결이 완전해서 감상하시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가난한 소년 덴지가 전기톱 악마 포치타의 심장을 갖게 되면서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시면 우선 장르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됩니다. 첨엔 소년만화스럽게 시작했다가 서서히 로맨스물처럼 발전하고 코미디도 건드렸다가 호러물로 변신하는가 싶은 순간 액션영화로 방향을 틀더니 한참을 내달리다 아련한 로맨스로 마무리합니다. 이 과정은 불과 99분 만에 이뤄져요. 155분이나 되는 ‘귀칼 무한성편’과 거의 1시간 차이죠.

    99분 안에 로맨스면 로맨스, 호러면 호러, 액션이면 액션을 뚜렷하게 드러내는데 TV판과 극장판의 확연한 차이는 액션입니다. 도심의 건물과 거리를 사정없이 파괴하며 내달리는 액션의 쾌감이 감탄스러운데, 흔히 영화적 연출이라고 말하는 지극히 카메라를 의식한 구도, 3D 애니를 이용한 공간감의 변주가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전기톱 악마인 주인공에 맞서는 악마가 폭탄의 악마이다보니 양측간 살벌한 대결이 발산하는 열기가 이미 상당한데 속도 역시 매우 빠르고요. 중간에 전기톱 악마를 “체인소 사마”라고 부르는 상어 녀석이 큰 활약을 하는데 이 녀석이 뿌리는 유머가 깨알 재미를 줍니다. (상어 녀석의 목소리 배우가 ‘귀칼’의 탄지로 담당. 알고 듣는 열성팬 귀엔 더 재미).

    제가 위에 ‘체인소 맨’만의 색깔을 말씀드렸는데, 그 색깔이 제가 “귀칼보다 재밌다”고 느낀 핵심입니다. 다르거든요. 특히 이번 ‘무한성편’ 후반부가 전형성과 좌고우면 않는 신파 때문에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반면(“오카에리” 한 번만 더 들으면 오조오억번), ‘체인소 맨’은 기본 설정부터 흔한 주인공 서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덴지는 정의 구현이나 선(善)의 전파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애초에 싸우게 된 게 배고파서거든요. 덴지가 원했던 건 잼 바른 식빵 한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자살했고, 천애고아인데 아빠가 야쿠자한테 진 빚을 산더미처럼 남겨두고 가서 그걸 갚겠다고 장기까지 팔았습니다. 유일한 친구는 우연히 만난 포치타. 케이크 사먹을 돈이 없어서 포치타와 함께 밀가루에 설탕 풀어서 먹는 부분에 이르면 어찌나 불쌍한지.

    덴지 과거사는 극장판엔 안 나오고, TV애니 보시면 알 수 있는데, 극장판으로 처음 덴지를 보더라도 바로 아실 수 있는 건 그의 결핍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덴지는 특히 모성에 대한 갈구가 두드러지는 캐릭터에요.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고, 만지고 싶어하는 부분이 강조되는데, 단순히 성애(性愛) 차원에서 그린 것만은 아닌 것 같고요. 소년의 치기 어린 과장된 표현에 담기긴 했지만,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리운, 지독하게 가난한 소년의 울먹임처럼 느껴져서 저는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보다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주인공이 있을까요.

    조선일보

    '극장판 체인소 맨:레제편'의 수영장신에서 유난히 예뻐보이는 레제. 그녀에게 이날 밤 수영은 단순한 유혹이었을까요, 이후를 예감한 애정의 표현이었을까요./소니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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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제와 친해진 것만 해도 그래요, ‘극장판 체인소 맨’ 성공의 일등공신인 레제PC에 경도된 디즈니가 망가뜨린 ‘예쁜 여주인공’을 관객에게 원없이 예쁘게 선사합니다. 덴지하곤 비오는 날 공중전화 박스에서 처음 만나는데 등장할 때부터 관객, 특히 여성 관객은 바로 아실 수 있어요. 살랑살랑 눈웃음이며 교태며, 기지배, 너 오늘 작정하고 나왔구나, 싶거든요. 실제로 레제는 작정하고 나왔습니다. 덴지를 파괴할 작정을. 덴지에게서 전기톱 악마의 심장을 뽑아내 가져가려고 접근한 폭탄의 악마가 바로 레제였거든요. 레제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장르가 호러로 바뀌는 부분의 연출이 탁월합니다. 폭죽까지 쏘면서 한껏 달아올랐던 장면이 너 죽고 나 죽자로 바뀌는데 이후 전개되는 액션은 위에 말씀드린 대로.

    근데 끝에 가서는 이것 참, 사생결단 전투 끝에 덴지가 레제에게 한 말은 “우리 둘이 멀리 도망가자”였으니. 예쁜 여자친구를 갖고 싶고, 예쁜 여자친구에게 사랑받고 싶은 모든 소년이 한번쯤 해보고 싶은 말이겠죠.

    레제는 덴지의 청을 거절했지만 결국 덴지가 기다리는 카페로 발길을 돌립니다. 하지만 덴지가 기다리는 카페를 눈 앞에 두고 레제는 죽어야 했는데요, 마지막에 ‘올해의 대사’로 꼽힐 한마디를 남깁니다. “덴지군, 사실은 나도 학교에 간 적이 없어.” 이 대사는 ‘체인소 맨’ 엔딩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데에 엄청난 힘을 발휘해요. 레제가 정체를 드러내기 전,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닌 덴지를 걱정하면서 “학교를 못 가서 어쩌니”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스스로를 향한 말이기도 했던 거죠. 소련이 키운 인간병기였던 레제가 덴지를 좋아했던 건 덴지의 결핍과 갈증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체인소 맨’은 이처럼 소년과 소녀의 한여름밤 꿈 같은 순애보가 달콤하게 녹아있어요. 둘 다 ‘악마’의 힘을 쓴다는 점이 다른 순애보와 아주 조금 다를뿐.

    이런 얘기를 이런 전개로 이런 정서에 이런 액션을 넣어 이런 속도로 보여주니 관객이 빠져들기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덴지에게 한마디 하고 싶네요. “덴지군, 사실은 나도 원작을 본 적이 없었어.” 덴지를 위해서라도 저는 ‘레제편’의 뒷얘기를 읽으러 (네이버 시리즈의) 쿠키를 계속 구워야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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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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