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별건 수사 아닌 부실 수사”
법원, 검찰뿐만 아닌 금감원도 지적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1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창업자가 서울남부지법 청사를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장경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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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 대해 검찰이 일주일째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판결이 내린 날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판결이 확정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10월 28일까지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재판장 양환승)는 지난 21일 1심 선고 당시 검찰의 ‘별건 수사’ 관행을 지적했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사건과 별다른 관련성이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술을 얻어내는 수사 방식은 이 사건에서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수사 주체가 어디가 되든 (별건 수사는) 이제 지양됐으면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 또한 “허위 진술”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검찰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이지만 허위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전 부문장은 금융감독원, 검찰에서 6차례 조사를 받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해 왔으나 별건인 ‘바람픽쳐스 고가 인수’ 관련 압수 수색 등 이후에 있던 두 번째 검찰 조사부터는 공소 사실에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은)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김 창업자가 카카오에서 한 SM 주식 매수 행위가 시세 조종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관련된 카카오엔터 부분에 대해서는 물량 확보 목적으로만 산 것으로 시세 조종과 무관하다는 진술을 유지했다”며 “카카오엔터는 시세 조종과 무관하지만 카카오는 시세 조종했다는 모순되는 진술”이라고 봤다.
통상적으로 검찰은 1심에서 무죄가 나더라도 항소해왔다. 그러나 법원이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 관행을 비판하고 핵심 증거까지 허위라고 판단하면서 검찰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 때 검찰의 기계적 상소 관행을 비판했었다. 이 때문에 검찰은 28일까지 김범수 창업자를 포함한 카카오 임원진에 대한 항소 여부와 범위를 두고 고심을 거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1심 재판 바로 다음날인 지난 22일 소셜미디어에 검찰을 겨냥한 글을 올렸다. 정 장관은 법원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검찰의 별건 수사를 지적한 것과 관련 “모든 수사기관 구성원들이 엄중하게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라며 “본건 아닌 다른 사건으로 사건 관련자를 압박해 진술을 얻어내는 수사는 진실을 왜곡하고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라고 썼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신빙성이 없다고 법원이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정성화 판사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동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지난달 무죄를 선고했다.
정 판사는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인 김 전 회장의 수첩과 법정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정 판사는 “(정치자금) 교부 여부나 주체 등에 대해서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수첩의 신빙성을 볼 때 정치자금을 교부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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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지난해 2월 하이브의 금융감독원 진정 이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전개됐다. 금감원은 “누구라도 공개 매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공개 매수 가격 이상으로 유지하려는 행위가 있었다면 자본시장법상 시세 조종 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며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복현 당시 금감원장은 “위법이 확인되면 법과 제도상 가능한 최대한의 권한을 사용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이후 이 사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며 서울남부지검에 이첩했다.
법원은 금융감독원의 조사 또한 깊이가 없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상적인 절차와 달리 금융감독원에서 매우 간략한 예비 조사(1~2일)와 문답 조사가 생략된 본 조사(5~6영업일)만 거친 채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와 증권선물의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검찰에 통보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금융감독원에서 시세 조종 주문 해당 여부에 관한 세밀한 조사나 신중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검찰에서도 면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기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 수사를 이끈 부장검사가 비상 계엄 다음 달 바로 사표를 내 수사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당시 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을 맡고 있던 장대규 전 부장검사는 카카오 SM 시세조종 사건뿐만 아니라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 수사도 맡은 바 있다. 지난해 10월 김 창업자가 보석으로 풀려나자 일주일 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항고장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1심 판결 당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주요 증인에게 진술을 압박했다는 재판부의 비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항소 여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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