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기억과 안전의 길에 추모의 마음을 담은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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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희곡 ‘안티고네’에서 주인공 안티고네는 국가권력(왕)이 허락하지 않은 ‘애도’를 행한 죄로 동굴에 갇힌다. 애도를 금지한 왕에게 아들은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안티고네의 행동은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죄가 되기는커녕 상을 받을 행동이라고 수군대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눈과 비를 맞으며 슬퍼했으나 ‘우리 사회가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는 유가족들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다. “저희가 더 모르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사람들인데.” 송해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애도와 기억 또한 유가족만으로 이룰 수 없으며, 생존자와 목격자 나아가 서울 한복판 충격적인 참사와 이후 3년을 지켜보고 겪은 사회 전반이 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어떤 시민들은 다른 시민들의 기억·애도하는 마음을 모아왔다.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활동가 이상민(30)씨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당시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동료 시민을 찾는다. 크리스마스에는 파티를 열고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부스를 차리며 “저도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만난 지 벌써 3년째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애도가 다양한 곳에서 필요하다”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피해자들이 피해 경험에서 나아가 참사를 고민하는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말에 녹아 있는 걸 볼 때 보람이 있고 기뻤다”고 말했다.
김지오(27)씨도 시민들의 애도를 모으는 사람이다. 그는 참사 1주기를 앞둔 2023년 여름 추모 메시지를 보존하는 자원 활동에 참여했다. 비바람을 맞아 알아보기 어렵게 된 글씨를 형광등 불빛에 비춰가며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이후 참사 생존자들이 일상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재난 이후를 거닐기’라는 석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지오씨는 “누군가가 그곳에 마음을 남겼다는 걸 보여주고, 또 다른 누군가가 참사를 알고 싶을 때 기초적인 자료가 남아 있길 바랐다”며 “인터넷 공간의 적대적 분위기는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는데, 보존된 기록이 인터넷에 남는다면 유가족들이 들어가 볼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4대종단 기도회를 마친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 등 시민들이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서울시청광장까지 행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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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이들 덕분에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이렇게 오는 건가 싶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분들이 가장 처음 저희의 손을 잡아주셨고, 종교계부터 학생들까지 사람들이 와 주었다”며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연대가 강력하고 중요한 거구나,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사이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했다. “유가족들이 나의 세계에만 들어가 있지 않고 밖의 세계에 나와 있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간이 만들어진 과정이었어요.”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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