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뉴진스(왼쪽부터 하니, 민지, 혜인, 해린, 다니엘)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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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뉴진스와 소속사 어도어의 전속 계약 유효 확인 소송 1심 판결 선고가 오는 30일 나온다. 이 사건은 ‘천재 디렉터’로 불린 민희진과 그가 키운 4세대 대표 아이돌 ‘뉴진스’가 국내 엔터테인먼트 1위 ‘하이브’를 상대로 일으킨 공개 반란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뉴진스는 업계에서 디렉팅 실력을 인정받아온 민희진이 어도어 대표를 맡으면서 기획한 걸그룹이다. 어도어는 방탄소년단(BTS)을 배출한 빅히트와 함께 하이브 산하 가장 경쟁력 있는 레이블로 꼽힌다.
뉴진스는 2022년 7월 데뷔하자마자 듣기 편한 ‘이지 리스닝’ 장르와 Y2K 열풍을 일으켰다. 데뷔 1년 만에 미국 빌보드 HOT 100 차트에 노래 5곡을 진입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지난해 4월 ‘뉴진스 엄마’로 불리던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간 갈등이 불거졌고, 그해 8월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기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를 해임했다. 이후 뉴진스 멤버들은 “새 경영진과 신뢰 관계가 파탄 났다”며 소속사와 ‘헤어질 결심’을 했고, 활동명을 ‘NJZ’로 임의 변경하면서 독자 활동에 나섰다.
그러자 어도어는 “양측 간 계약은 유효하다”며 전속 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내면서 소송 기간 중 멤버들이 연예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같이 냈다. 법원이 지난 3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뉴진스 멤버들은 당분간 독자 활동 길이 막히게 됐다. 법원이 제동을 걸자 지난 3월 홍콩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30일 1심 판결이 예정된 이번 전속 계약 분쟁의 핵심 쟁점은 뉴진스와 어도어 사이에 계약 해지 사유인 신뢰 관계 파탄이 발생했는지 여부다.
◇ “하이브, 뉴진스 아끼는 거 맞아요?”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024년 4월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에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나눈 카톡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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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발단이 된 건 민희진과 하이브의 갈등이다. 2024년 4월 22일 하이브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해 레이블 독립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 착수와 함께 민희진 대표의 사임을 요구했다. 당시 민희진 측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한 신인 걸그룹 뉴진스를 허락 없이 카피했고, 이에 항의하자 해임을 요구받았다”고 반박했다.
민희진의 대표직 해임을 둘러싼 갈등 끝에 하이브는 8월 27일 이사회를 열어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민희진은 어도어의 “프로듀싱 업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부당 계약이라며 거절하고 그해 11월 20일 사내이사에서도 물러나며 어도어를 완전히 떠났다.
◇ 유튜브 라방부터 긴급 기자회견까지… 미디어 앞에 선 뉴진스
걸그룹 ‘뉴진스’ 멤버들이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전 대표와 모회사 하이브의 갈등과 관련해 “민희진 전 대표를 복귀시켜달라”며 직접 입장을 밝혔다. /유튜브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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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이 어도어 대표에서 해임되자 뉴진스가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2024년 9월 11일 유튜브 라이브를 켜고 민희진의 대표직 복귀를 요구했다. 두 달 뒤에는 “14일 이내에 전속 계약의 중대한 위반 사항을 모두 시정하라”며 어도어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간 전속 계약 분쟁은 가수가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계약의 법적 부당함을 알리는 방식으로 발생했다. 그런데 뉴진스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으로 계약 해지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장보은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뉴진스의 경우 라이브 방송을 한다든가 미디어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전에 없던 문법을 사용했다”며 “아이돌이 대중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 뉴진스 “신뢰관계 파탄” vs 어도어 “의무 다했다”
뉴진스는 사태의 발단인 민희진 감사 및 해임 시도가 잘못된 전제였다고 지적했다. ▲‘뉴 버리고 새판 짜면 될 일’이라고 적힌 하이브 내부 문건 ▲하니가 하이브 매니저에게 ‘무시해’라는 말을 들을 일 ▲민희진 해임에 따른 프로듀싱 공백 등도 계약 해지 사유로 들었다. 이는 모회사 하이브가 뉴진스를 차별하고 어도어는 소속 아티스트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이런 사안들이 쌓여 어도어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파탄 났다는 주장이었다.
어도어는 뉴진스에 210억원을 투자했고 수익 정산도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전속 계약 해지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당시 첫 변론 기일에서 “보통 신뢰가 깨지는 건 정산을 한 번도 안 해주고 이런 경우인데 이번 사건은 굉장히 특이하다”며 “신뢰 관계 파탄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뉴진스 다니엘과 민지가 지난 8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 조정기일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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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승기를 잡은 건 어도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3월 21일 어도어가 NJZ 멤버 5명을 상대로 낸 ‘기획사 지위 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전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뉴진스와 어도어의 신뢰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 K팝 전속 계약 분쟁사, 신호탄 쏜 JYJ
5인조 동방신기 ./조선일보DB |
K팝 업계에서 전속 계약 분쟁은 종종 발생해 왔다. 보통 이전과 위상이 달라진 연예인들이 계약 기간이나 정산 방법 등이 불공정하다며 계약 무효를 요구하는 경우여서, ‘그룹 홀대론’ ‘신뢰 관계 파탄’ 등을 주장한 뉴진스와는 차이가 있다.
전속 계약을 둘러싼 최초의 법적 분쟁 사례는 5인조 동방신기의 멤버 김재중‧박유천‧김준수가 2009년 7월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건이다.
계약서상 이들은 SM과 13년 계약을 맺었다. 전속 계약 해지 시 총 투자금의 3배, 일실 이익의 2배에 이르는 위약금을 내도록 돼 있었다. 반면 SM은 신인을 발굴 및 육성하는 데 드는 시간과 투자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법원은 그해 10월 세 사람의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독자적인 연예 활동을 보장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계약 기간 13년은 전성기의 거의 전부를 지배당하는 결과가 돼 지나치게 장기”라며 “멤버들은 과도한 손해배상 부담 등으로 계약 관계에서 이탈하는 길이 철저히 차단됐다”고 했다.
이 사건은 노예 계약 논란을 촉발시켰고 정부가 ‘7년 기한’의 표준 전속 계약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왼쪽부터 JYJ의 김준수, 김재중, 박유천./조선일보DB |
이후 김재중‧박유천‧김준수는 그룹 ‘JYJ’를 결성하고 독자 활동을 시작했다. SM엔터와는 본안 소송 등을 이어가다 3년 4개월 만에 법원 임의 조정 끝에 양측 합의로 갈등을 마무리했다.
◇‘으르렁’ 뜨니 고향으로 ‘쌩’… 中 멤버 리스크
EXO-M(왼쪽부터 크리스,시우민,첸,루한,타오,레이). /SM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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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아이돌 때도 계약 분쟁은 반복됐다. 이 시기엔 그룹 활동으로 인지도를 높인 중화권 멤버들이 계약 무효를 요구하고 중국으로 가 활동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는데, 특히 12인조 보이그룹 ‘엑소’(EXO)에선 중국인 멤버 4명 중 3명이 무단 이탈해 논란이 일었다.
중국계 캐나다인 크리스(우이판)가 2014년 5월 SM을 상대로 전속 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을 내고 중국으로 떠난 게 시작이었다. 전속 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은 원고와 피고 간 계약 효력이 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다. 이어 5개월 뒤 루한과 타오도 수익 배분의 부당함, 무리한 일정 등을 문제 삼아 소송을 냈다.
그 결과 크리스‧루한은 법원 권고로 원래 계약 기간을 유지하기로 합의했으며 타오는 패소했다. JYJ 가처분 소송 때와 다른 결과가 나온 근거 중 하나는, 이들이 체결한 전속계약서가 대중문화예술인 표준 전속 계약서를 반영했다는 데 있었다.
엑소 타오./스포츠조선 |
타오의 판결문에는 재판부의 이런 판단이 드러나 있다. 타오는 17세였던 2010년 아버지 입회 하에 SM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기본 7년에 부속 합의서를 통해 해외 진출을 위한 3년 연장에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공정위 표준전속계약서는 7년이 넘으면 가수가 계약 해지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별도 합의에 따라 장기 계약도 가능한 것으로 정하고 있다”며 “타오의 해외 진출 계획을 고려할 때 계약 기간 10년은 부당하지 않다”고 했다.
◇‘이달의 소녀’ 츄, 아무리 일해도 정산금이 0원일 수 있다?
가수 츄가 2023년 7월 19일 오후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제2회 청룡시리즈어워즈 레드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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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수익 분배율과 정산금으로 갈등을 겪다 전속계약 해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츄가 2021년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사례다.
2017년 츄와 블록베리가 맺은 전속 계약서상 수익 배분은 이랬다. 수입금(매출)이 발생하면 블록베리와 츄가 7대3으로 나눈 뒤, 츄의 연예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소속사와 츄가 5대5 부담한다.
예를 들어 매출 100만원이 발생했고 그중 연예 활동에 투입된 비용이 60만원이다. 먼저 블록베리는 70만원, 츄는 30만원으로 수익을 나누고, 비용 60만원의 절반인 30만원을 각각 지불하는 식이다. 블록베리는 70만원 중 30만원을 내도 40만원이 남지만 츄는 30만원을 내고 나면 어떤 수익도 가져가지 못한다.
매출 대비 비용 비율이 60%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츄가 실질적으로 정산금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츄의 계약은 ‘매출에서 연예 활동에 소요된 비용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을 나누도록’ 권고하는 표준 전속 계약서와도 차이가 있었다.
2023년 8월 1심 재판부는 수익 분배 조항이 “매우 불합리하다”며 본질인 수익 분배 조항이 무효인 이상 2017년 맺은 전속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츄의 입장에선 매우 활발히 활동해야 실질적으로 수익금을 가져갈 수 있다”며 “반면 블록베리로선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이 약해질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 물거품 된 빌보드 영광… 피프티 피프티 사태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YT FIFTY) 시오(왼쪽부터)와 새나, 아란, 키나가 2023년 4월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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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 계약 분쟁이 발생하면 팬들은 대개 가수를 응원하기 마련인데, 이들을 키워낸 소속사의 공(功)이 조명받는 경우도 있었다. 2023년 일어난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 사태’다.
그룹 피프티 피프티(키나‧아란‧시오‧새나)는 데뷔 후 넉 달 만에 대박을 쳤다. 타이틀곡 ‘큐피드’(CUPID)가 틱톡에서 인기를 끌었고, 2023년 4월부터 25주 연속으로 미국 빌보드 핫100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이들이 연예 기획사 ‘어트랙트’ 소속이란 점이 알려지면서 ‘중소돌의 기적’으로도 불렸다.
물이 들어와 노를 저어야 할 때, 2023년 6월 피프티 피프티는 돌연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멤버들은 소속사의 정산 의무 및 정산 자료 제공 의무 위반, 건강 상태를 배려하지 않는 무리한 활동 강행 요구 등을 주장했다.
법원은 멤버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2023년 8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지난 4월 일부 수입에 관한 정산 내용이 멤버들에게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후 어트랙트가 누락 내역을 시정했고, 신뢰 관계를 파탄시킬 정도의 정산 의무 또는 정산 자료 제공 의무의 위반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어트랙트가 멤버 건강 관리 및 배려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키나를 제외한 피프티 피프티 멤버 3인은 법원 결정에 불복해 즉시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키나는 피프티 피프티로 복귀했고 어트랙트는 아란‧시오‧새나에게 전속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어트랙트 전홍준 대표가 피프티에 투자하기 위해 차와 롤렉스 시계를 팔고 수십억 원을 투자했다는 사연까지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선 멤버들을 향해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스스로 갈랐다’ 등의 비판이 일었다.
현재 어트랙트는 前 멤버 3인과 이들의 부모, 당시 피프티 피프티 프로듀싱을 맡았던 더기버스 안성일 대표 등 총 12명을 상대로 낸 1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美처럼 로열티·홍보비까지 구체적 계약해야 장기간 신뢰“
표준 전속계약서가 마련됐는데도 유독 K팝 업계에서 관련 분쟁이 끊이질 않는 걸까. K팝 아티스트 한 명을 배출하기까지 각종 트레이닝‧음원 및 안무 제작‧앨범 마케팅 등 막대한 돈이 투자되고, 계약마다 이해관계가 다른데도 ‘표준 약관’이라는 명목으로 구체적인 합의가 안 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테면 앨범 발매량을 기준으로 계약할 수 있는데 현재는 ‘계약 기간 7년’이 의무로 여겨지는 식이다.
장 교수는 “표준 전속 계약서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츄 수익금 분쟁 사례처럼 표준이라는 말로 계약상 문제가 교묘히 가려질 수 있기 때문에 전속 계약을 더 구체적으로 맺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아티스트가 음반 제작사와 맺는 레코딩 계약을 보면, 어느 정도의 돈을 투자할지 계약서상 지표로 적어 놓는다. 또한 분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로열티부터 프로듀싱 비용, 홍보 비용, 콘서트 수익 배분 등 최대한 자세히 계약서에 규정한다.
장 교수는 “전속 계약은 장기간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어느 범위까지 투자를 이해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적어놔야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사가 이 과정에서 협의할 수도 있고 모두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최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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