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5일 제주시 연동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ㄱ교사 분향소 안 추모 메시지. 서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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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중학교 교내에서 40대 교사가 사망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교권보호위원회가 학생 가족의 민원이 교육활동 침해 행위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제주도교육청은 아직도 진상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아 ‘늑장·부실 조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강승민 제주시교육지원청 교육장은 29일 제주시 연동 도교육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학교의 요청으로 지난 13일 지역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열렸다”며 “교보위는 (민원을) 교원의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로,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 적시된 ‘비밀 누설 금지’ 조항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5월22일 새벽 ㄱ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엔 학생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족은 자주 결석하고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지도하는 ㄱ교사에게 학생 가족 ㄴ씨가 하루에도 수차례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교보위 심의에 ㄱ교사 가족은 참석했지만, 학생 가족인 ㄴ씨는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ㄴ씨는 특별교육 8시간을 이수하라는 처분을 받았다. 교보위는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육활동 침해 보호자에게 ‘서면사과 및 재발방지 서약’이나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조처를 내릴 수 있다. 특별교육 이수 처분을 받은 보호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120일 안에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100만원이 부과된다.
교원·변호사·경찰·행정사·학부모 등 7명으로 구성된 교보위의 결정은 제주동부경찰서 전담수사팀의 수사나 도교육청 진상조사반의 조사와는 별개다. ㄱ교사가 숨진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경찰 수사나 도교육청 진상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난 5월30일 제주시 연동 제주도교육청 광장에서 ㄱ교사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서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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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 브리핑에선 도교육청의 부실한 진상조사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도교육청이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한 사건 경위서에는 지난 5월19일 ㄱ교사가 학교에 민원 사항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보고한 뒤 두통이 심해 2주간 병가를 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교감이 이를 허락했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ㄱ교사와 교감의 실제 통화한 내용에는 ‘학부모가 따지는 걸 해결한 다음에 병가를 내는 거는 괜찮을 것 같다’는 교감의 지시가 들어있다. 학교가 작성한 사건 경위서와 달리, 교감이 ㄱ교사에게 민원을 해결한 뒤 병가를 가라고 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ㄱ교사는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지난 7월4일 이런 내용의 녹취 파일을 확보하고도 국회에는 학교가 허위로 작성한 경위서를 그대로 제출했다. 당시 국회는 도교육청에 ‘학생 교장·교감이 작성한 사망 경위 보고서 등 일체 자료’를 국정감사 자료로 요청했지만, 녹취 파일은 빼놓기도 했다. 도교육청이 학교에 불리한 내용을 일부러 감췄거나, 제출된 자료들을 제대로 파악조차 안 했다는 비판을 부르는 부분이다.
진상조사반장을 맡은 강재훈 도교육청 감사관은 “당시에는 (경위서와 실제 대화 내용이 다르다는) 자세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녹취 파일은) 법률에 따라 (제공이)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 사생활 침해 등의 부분이 있어서 국회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나도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교사·시민단체의 지적에 대해서, 강 감사관은 “경찰이 수사력이나 정보 수집력이 도교육청보다는 월등하다”며 “우리는 교직원만 조사·확인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찰 조사 발표 후 최대한 빠르게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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