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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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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브해의 신흥 해적?...군함 대신 민간 선박 격침하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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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부터 최소 57명 살해, ‘마약 운반’ 의심
    의회 승인 없이 비전투원 공격, 불법 논란


    한국일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28일 일본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기지에서 주일미군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요코스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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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남미 해역에서 자꾸 군함 대신 민간 선박을 격침하고 있다. 미국으로 마약을 실어 나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회 승인을 받지 않은 군대의 비(非)전투원 공격인 만큼 불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마약 밀매? 무조건 죽인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28일(현지시간) 엑스(X)를 통해 전날 미군이 3차례에 걸쳐 태평양 동쪽 멕시코 인근 공해상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4척을 공격해 가라앉혔다고 밝혔다. 격침 장면이 담긴 동영상도 공개했다. 이번 공격으로 각 선박에 타고 있던 ‘나르코 테러리스트(중남미 일대 마약 밀수 조직원)’ 남성 15명 중 14명이 사망했다고 헤그세스 장관은 설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군 당국자를 인용해 생존자 1명이 멕시코와 과테말라 인근 해역에서 구조됐다고 전했다. 헤그세스 장관에 따르면 멕시코 당국이 이 사건을 넘겨받아 구조 작업을 책임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초국가적 범죄 조직 대상 공격을 확대 중인 미국이 멕시코 군대까지 끌어들였다”고 평가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X 글에서 “다른 나라를 방어하는 데 국방부가 수십 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국을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르코 테러리스트들은 알카에다(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보다 더 많은 미국인을 (마약으로) 죽였고 그들은 같은 취급을 당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을 추적해 그들의 네트워크를 파악한 뒤 그들을 사냥하고 제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일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3일 미 워싱턴 백악관 국빈 만찬장에서 열린 범죄 카르텔 관련 라운드테이블 행사가 끝난 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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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을 공격한 것은 지난달 초부터다. 불과 두 달 새 공개된 공습만 13차례였고, 이로 인해 최소 57명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카리브해의 베네수엘라발(發) 선박이 미군의 표적이었지만 최근 작전 범위가 콜롬비아 인근 동태평양으로 확대됐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는 좌파 대통령이 집권 중인 나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상 작전까지 시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일본 방문 중 요코스카 미국 해군기지 주일미군 대상 연설에서 “우리는 이미 그것(마약 조직)을 바다에서 이기고 있다. 이제는 육로를 통해 들어오는 마약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 데나 군을 동원하나”


    그러나 위법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통령이 마약 카르텔 및 그 조직원을 적 전투원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합법 행위라는 게 트럼프 행정부 판단이다. 반면 범죄 용의자라 할지라도 전투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을 군이 고의로 공격하는 것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라고 NYT는 짚었다. 의회가 승인하지 않는 공격이 지속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여당인 공화당 의원도 예외가 아니라고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전했다.

    심지어 해적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질책마저 들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카리브해의 새로운 해적들’ 제하 이날 사설에서 “공해상에서 민간 선박을 공격하는 행위를 부르는 말이 해적 행위”라며 “마약 남용이 미국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모든 사회적 재앙이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전쟁의 대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에 승인을 구하지 않은 것은 비전투원 살상이 승인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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