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 전세계 핵탄두 90% 보유
기술 발전으로 핵의 전략적 효용성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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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시험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1992년 이후로 핵실험을 자제해온 정책을 33년 만에 뒤집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 경쟁국이 새 운반체계 확보 및 개량형 개발 등 핵무기 현대화에 나서자, 미국도 발맞춰 핵 역량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세계 강대국들의 핵 군비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러시아, 중국에 5년 내 따라잡힐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다른 국가들의 시험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는 동등한 기준으로 우리의 핵무기 시험을 개시하도록 국방부(전쟁부)에 지시했다"며 " 이 절차는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내가 첫 임기 동안 기존 무기의 완전한 최신화 및 개량을 통해 이룬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는게 싫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핵무기 역량에서) 러시아가 2위, 중국은 뒤처진 3위지만 5년 내 따라 잡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국의 핵무기 시험이 어떤 성격인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다른 국가들의 행위를 고려한 '동일한 기준'이라는 말로 미뤄볼 때 핵폭탄을 실제로 터뜨리는 핵실험보다, 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 같은 핵 전력 위력을 과시하는 성능 시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중국은 1996년 이후 핵실험을 한 적이 없고, 러시아는 1990년 이후 확인된 핵실험이 없다는 것이다.
NYT는 "과학자들은 핵무기 실험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충분히 재현할 수 있어 과거 네바다 지하에서처럼 폭발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며 "그러나 최근 미국이 노후 핵전력을 현대화하면서, 일부에서는 핵실험 재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상·해상·공중 발사 미사일로 구성된 대규모 전략핵 훈련을 실시한 지난해 10월 29일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폭격기 'Tu-95'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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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진핑과 정상회담 앞두고 "핵무기 시험 개시" 언급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1시간여 앞두고 나왔다. 앞서 중국은 지난 28일 발표한 제15차 5개년 경제사회 발전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전략적 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중국의 전략적 억제 강화는 미국과 러시아와의 핵무기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 연구소(SIPRI)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5,177개와 5,459의 핵탄두를 보유, 전세계 핵무기의 90%를 차지한다. 중국은 이에 비해 약 600개의 핵탄두를 보유했지만, 2023년 이후 매년 약 100개의 새로운 핵탄두를 추가하고 있다. 은퇴한 중국 인민해방군 대령인 저우보는 SCMP에 “중국은 어느 나라도 선제 핵공격을 감히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수준으로 전략적 억제를 확장하고 있다”며 “중국의 핵탄두 수가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전략적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두 번째) 러시아 대통령이 29일 모스크바에 있는 군병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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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핵 통제 체제 약화도 기름 부어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9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핵 발전장치로 구동하는 수중 무인기(드론) '포세이돈'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핵동력으로 깊은 수심에서 장기간 작전이 가능해, 전세계 어느 곳이든 핵 타격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앞서 26일에는 사거리가 '무제한'이라고 주장하는 신형 핵추진 대륙간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에 대한 시험을 완료했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러시아와 대립하는 프랑스도 지난 24일 SLBM인 M51의 새로운 개량형인 M51.3 미사일을 실전배치한다고 밝혔다. 9,500㎞에 달하는 M51.3은 유럽 대서양 연안에서 발사해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게 가능하다.
강대국들의 핵 군비 경쟁이 심화하는 배경엔 미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 갈등 등 지정학적 위기감 고조에 따른 안보 불안이 주요 원인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핵을 통해 확실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각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스텔스기 같은 기술 발전은 핵무기의 전략적 효용성을 더욱 키웠다. 미국과 러시아 간 체결된 핵군축 조약인 ‘뉴스타트(New START)’가 내년 2월 만료되는 등 글로벌 핵 통제 체제가 크게 약화하고 있는 점도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국제 핵군축 싱크탱크 협의체인 ‘딥컷츠 프로젝트(Deep Cuts Project)’는 “뉴스타트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감축시켰다”면서 “하지만 내년 2월 만료됨에 따라 중국의 핵무기 증강 계획과 맞물려 제한 없는 핵 군비 경쟁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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