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말하는 원잠 시나리오
◇“美 고농축우라늄 받아 독자 건조해야”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31일 본지 통화에서 “미국에서 90% 이상 고농축우라늄 연료를 받고 우리 독자 설계로 잠수함용 원자로와 선체를 개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저농축우라늄 활용 시 길어도 10년 간격으로 연료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고농축우라늄 연료는 원잠 수명이 끝날 때까지 교체할 필요가 없어 연료봉 교체 및 추가 연료 구매가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동안 고농축우라늄은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어 미국에서 도입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신 위원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군사적 이용을 위한 핵물질 이전은 안 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잠수함의 ‘연료’로 이용하는 것이므로 이는 비군사적 이용”이라고 했다.
미국의 원잠 연료·기술 이전을 위해서는 이런 물자와 기술을 통제하는 미국 원자력법 개정이나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 미국 행정부 내의 비확산론자들과 미 의회를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원잠 도입을 인정하고, 중국·러시아·북한이 해군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러시아가 최근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핵탄두 탑재 가능 원자력 추진 어뢰 ‘포세이돈’은 동해에 있는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해 미 본토 연안 지대를 타격할 능력이 있다”며 “이런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 원잠이 미국을 대신해 인·태 지역에서 활동해야 할 필요성을 미국에 레버리지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 건조, 장단점 비교 검토 필요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필리조선소에는 잠수함 건조 시설이나 원자력 관련 시설이 전혀 없어서 새로운 인프라 건설이 필요하다. 전문 인력 부족과 비용 증가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건조 시 한국형 원잠 1척당 3조원 안팎이 들 것으로 추정했는데 미국 조선소에서 개발하게 될 경우 인건비 및 미국 공급망을 활용하라는 미 측 압박 등으로 비용이 배 이상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 유지·보수·정비(MRO)까지 미국에서 하게 될 경우 유지비는 천문학적으로 치솟을 전망이다. 7900t급 미국 버지니아급 원잠 1척당 가격이 5조7000억원인데 한국형 5000t급 원잠을 개발·운용하는 데 ‘검증된’ 버지니아급 원잠보다도 더 큰돈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동의하에 원잠 기술을 개발해 최종적으로 미국의 ‘원잠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투자 가치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미 해군의 원잠까지 우리가 건조하게 된다면 미국의 ‘대체 불가능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미국이 한국에 원잠을 허용하게 된 국제 정치적 여건을 지혜롭게 활용해 우리 해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농축·재처리 권한 받아내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원전 생태계를 위해 원잠 문제와는 별개로 2015년 개정된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도 계속 추진해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당장 2030년 이후엔 원전 내 저장 시설 포화로 사용 후 핵연료 보관이 불가능해져 재처리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핵무기 개발과 무관한 20% 미만 우라늄 농축이 가능해져야 최근 각광받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개발 등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SMR은 상용 원전에 쓰이는 3~5% 저농축우라늄보다 더 농축된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농축도 5~15%)을 사용하는데 세계적으로 공급 문제를 겪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돼야 우리 원전 업계도 고순도 저농축우라늄 생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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