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급락해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이날 코스피,코스닥 지수 종가가 표시돼 있다. 김경록 기자 / 2025.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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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인공지능(AI) 거품론’ 공포가 5일 아시아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다. 코스피는 이날 장중 6% 넘게 추락해 3900선까지 깨졌다가 4000선을 간신히 지켜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한때 4% 넘게 빠지며 5만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대만 자취안(-1.42%)과 홍콩 항셍(-0.07%) 지수도 일제히 내렸다.
이날 달러당 원화값도 전날보다 11.5원 내린(환율은 상승) 1449.4원을 을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로 주간 종가기준으로는 약 7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미국 AI 소프트웨어 분야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팔란티어가 호실적을 발표한 다음 날인 4일(현지시간) 나스닥 시장에서 8% 가까이 폭락한 게 직격탄이 됐다. 팔란티어의 3분기 매출액은 11억8000만 달러(1조7000억원)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하지만 실적 개선 속도보다 더 가파르게 치솟은 주가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팔란티어 주가는 올해 들어 152.2% 뛰었다.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200배를 넘어 ‘고평가’ 논란이 커졌다. 인프라스트럭처 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제이 햇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이 AI의 잠재력을 가격에 반영해왔지만, 이제는 ‘증명하라’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실적이 뒷받침되더라도 200배의 PER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AI 대표종목인 오라클 역시 12개월 선행 PER이 30배를 넘어 올해 약 49% 상승했지만, 이날 3.75% 급락했다. AI 열풍을 이끈 엔비디아와 AMD도 각각 4% 가까이 하락했다. 팩트셋 데이터에 따르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4일(현지시간) 선행 PER이 약 30배로 지난 10년간 평균 25배를 크게 웃돌았다.
김주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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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거품론을 확산시킨건 마이클 버리 사이언자산운용 대표가 팔란티어·엔비디아의 주가 하락에 베팅(풋옵션)한 게 알려지면서다. 그는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이자 2008년 미국 증시 폭락을 예견한 투자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이언자산운용은 9월 말 기준 팔란티어에 9억1200만 달러(약 1조3200억원)상당의 풋옵션과 엔비디아에 약 1억8700억 달러 규모의 풋옵션을 행사했다고 공시했다. 버리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종종 거품과 마주한다”며 “때로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승리 전략일 때도 있다”고 밝혔다.
올해 AI 기술주를 둘러싼 거품론이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규모 투자와 치솟는 주가에 비해 성과가 초라해서다. 대표적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올해 상반기 생성형 AI를 도입한 153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95%가 유의미한 매출 제고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운용업계 관계자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기업 가치가 5000억 달러에 이르지만 지난해만 50억 달러 적자를 냈다”며 “막대한 투자에 비해 수치로 보이는 성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거품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2000년 ‘닷컴 버블과 비교하면 AI에 쏠리는 자금은 이제 초기 수준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1990년 초반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2% 초반에 불과했던 컴퓨터 등 정보처리 장비에 대한 투자가 2000년 말 2.9%까지 약 0.9%포인트 상승했다”며 “(같은 조건에서) 현재는 이보다 절반 수준인 0.4%포인트 올랐다”고 말했다. IT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된다면 관련 기업들의 실적은 늘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도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대규모 AI 투자에 나선 데다 생성형 AI 기술이 대중화되고 있어 주가에 거품이 꼈다고 판단하긴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월가 중심으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조정받을 가능성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아시아 증시가 올해 과도하게 오른 데다, 연말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줄면서다. 모건스탠리의 테드 픽 최고경영자(CEO)는 “거시경제 충격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10~15%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며 “위기의 조짐이라기보다 건강한 조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글로벌 증시가 앞으로 1~2년 동안 10~20%가량 하락할 거 같다”고 전망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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