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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종묘 앞 142m 빌딩 들어서나…국가유산청장 “세계유산 취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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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종묘∼퇴계로 일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개발 완료 후 예상 모습.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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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문화유산 보호구역 밖의 재개발을 규제하는 조례 조항을 폐지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에 유네스코나 문화재 당국과의 협의 없이 고층 빌딩 건립 등의 재정비계획 추진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화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시 문화재보호 개정 조례안’ 의결을 무효로 해달라며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9월 문화재 반경 100m 이내의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밖이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인허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시 문화재보호조례 제19조 제5항을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삭제했다. 이에 문체부는 같은 해 10월 서울시의회가 문화재청장(현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하지 않고 조례를 개정한 것은 상위법인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옛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라며 무효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문화재보호법과 이 법 시행령에서 이 사건 조례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국가유산청장과의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거나, 이 사건 조례 조항과 같은 내용(보호구역 밖 개발 규제)을 반드시 두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서울시의회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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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서울시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을 벗어난 곳에 대한 규제가 사라져 20여년간 정체돼온 세운4구역 재정비 사업이 힘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종로변의 최고 높이는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상향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반면 문화재계는 이번 판결이 그동안 국가유산청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암묵적으로 작동해왔던 협의 관계를 사실상 깨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조례 개정이 문화유산 주변 건축·개발 때 바깥의 인근 영역에도 적용되던 ‘보존영향 검토’ 조항을 삭제한 것인데, 이로 인해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재개발 추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우려와 관련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 이뤄지는 건설 공사에 대해 일률적으로 문화유산 보존영향 검토 의무를 부과하지 않더라도, 문화유산법 제12조에 따라 국가유산청장은 해당 건설 공사가 문화유산 훼손 우려 등이 있을 때에는 건설 공사 시행자에 대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며 “이 사건 조례 조항을 삭제한다고 해도 문화유산 또는 역사문화환경의 보호에 차질이 초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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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서울시가 이번 판결을 내세워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와 불과 180m 떨어진 세운4구역에 초고층 빌딩군을 유네스코나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추진할 경우, 세계유산 보존 관리를 위한 협의 체계가 사실상 붕괴되고, 종묘 유산이 위험유산으로 지정되거나 지정 자체가 해제되는 최악의 상황마저 우려된다는 말이 나온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의 “서울시가 개발 공사를 강행한다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며 “실로 깊은 유감”이라고 답했다.



    최근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 세계 문화유산 학계에서는 자연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공식 보호구역 외에도 인근 바깥 영역(와이드 세팅)까지 포괄하면서 유산에 실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대응 조치를 권고하는 쪽으로 심의와 규제 요구를 강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유네스코의 유산 영향평가가 갈수록 중시되는 세계적 흐름을 무시하고 기습 공시된 서울시의 세운4구역 고층 개발안은 뒤이은 대법원 판결을 업고 자칫 서울시의 독주 양상으로 흘러 더욱 민감한 파장 또는 파국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되새겨볼 만한 국내외 전례들이 있다.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강 계곡은 최악의 사례로 꼽힌다. 이 계곡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도시 유적과 녹지 공간이 강과 어울린 자연문화유산 복합지대로 2004년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이후 시 정부가 유산 고유의 가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유네스코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을 가로지르는 4차로 교량 건설을 강행하면서 2009년 처음으로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당시 현지 법원이 교량 건설을 두고 합법적이란 판결을 내렸지만, 세계유산 퇴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반면 반면 충남 공주시는 몇년 전 세계유산인 백제 공산성 인근 금강에 새 철교 건립을 계획하면서 규모와 형태, 디자인까지 유네스코의 유산 영향평가 심의를 받아 확정하며 원만하게 사업을 추진한 모범 선례를 만들었다.



    서울시는 현재 세계유산 추가 등재를 추진 중인데 여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서울시는 2017년 등재가 좌절된 전력이 있는 한양도성을 북한산성과 묶어 ‘조선왕조 수도방위 시스템’으로 202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세계유산 종묘 경관과 관련해 유네스코가 권고한 영향평가를 묵살한 채 세운4구역 재개발을 강행한다면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 문화유산위원인 강동진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서울시가 종묘 앞에 초고층 빌딩군 재개발을 추진하는 건 서로 상치되는 이율배반적인 행보로, 추가 등재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종묘가 세계유산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관계 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필요한 조치들을 준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nuge@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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