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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지휘란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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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 강국’ 핀란드 스타 지휘자

    산투마티아스 루발리 인터뷰

    핀란드인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것이 사우나다.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핀란드 출신 명지휘자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40)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명문 악단들의 지휘 요청이 쏟아지지만, 잠시라도 짬이 나면 어김없이 고국 핀란드 남서부 탐페레 인근의 농장으로 향한다. 지난 2일(현지 시각) 런던 공연장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만난 그는 “한겨울에 영하로 내려가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을 깨고서 몸을 담근 뒤 곧바로 사우나에 들어간다. 무엇보다 혈액순환과 건강에 좋다”며 웃었다. 광활한 숲과 호숫가의 농장에서 콩을 재배하고 산책하거나 낚시와 사냥을 하는 것도 그의 취미다.

    조선일보

    영국 명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인 산투마티아스 루발리. “조성진은 불고기와 소주를 즐기는 음악 친구”라며 웃었다./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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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핀란드가 사우나로만 유명한 건 아니다. 한국이 피아노·바이올린 같은 기악과 성악 강국이라면, 핀란드는 세계적 마에스트로(지휘 거장)들을 배출하고 있는 ‘지휘 강국’이다. 시벨리우스 음악원의 전설적 스승인 요르마 파눌라(95)를 사사한 핀란드 지휘자들이 명문 악단의 수장으로 속속 ‘입성’하고 있다. 현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인 루발리도 그중 하나다. 루발리는 “지휘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이해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라는 걸 스승에게 배웠다. 어릴 적 지휘대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지휘하다가 많이 혼나기는 했지만…”이라며 웃었다.

    루발리의 부모는 모두 핀란드 라티 심포니 단원이었다. 아버지의 악기는 클라리넷, 어머니는 바이올린이었다. 부모님이 재직하던 시절의 지휘자가 전 서울시향 감독인 오스모 벤스케(72)다.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오케스트라에 가서 리허설과 공연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기억에 남아 있는 인생 첫 음악은 하차투리안의 ‘칼의 춤’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달리 그의 첫 악기는 독특하게도 타악기였다. 루발리는 “물론 피아노·바이올린도 함께 배웠지만, 오케스트라의 맨 뒷자리에서 신나게 때리는 팀파니가 가장 멋져 보였다”고 했다. 어릴 적에는 밴드에서 재즈와 로큰롤,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드러머로도 활동했다. 이 때문에 관현악의 다채로운 효과와 타고난 리듬감도 그의 음악적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앞으로 단원들과 함께 전설적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베니 굿맨(1909~1986)의 곡들도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그의 지휘뿐 아니라 드럼 실력도 볼 수 있을 듯했다.

    부모님의 악단이었던 라티 심포니 등에서 타악기를 연주하며 틈틈이 지휘를 공부하던 그에게 지휘 데뷔 기회가 찾아온 건 스물네 살 때인 2009년이었다. 당시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연주를 앞둔 지휘자가 취소하면서 급히 ‘대타’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연주 직전까지 한 주 내내 긴장했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고 했다. 그 뒤 핀란드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지휘계의 샛별’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루발리는 핀란드 ‘국민 음악가’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뿐 아니라 20~21세기 현대음악에서도 남다른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음 달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도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클라라 주미 강)과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 등을 들려준다. 그는 “이번이 첫 방한이지만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많은 한국 연주자와 즐겨 연주한다. 특히 조성진은 불고기와 소주를 함께 즐기고 무대에서도 손발이 척척 맞는 음악 친구”라며 웃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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