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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MT시평]경제안보 트릴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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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장보형 경제평론가




    한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나란히 방한했고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도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경영진과 AI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그 짧은 한 주가 보여준 것은 한국이 글로벌 경제안보의 교차로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경제와 안보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다. 미국의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21세기 기술패권 경쟁하에 경쟁력과 국가안보 및 복원력 강화를 목표로 삼은 미국의 전략을 이른바 '경제안보 트릴레마'(Economic Security Trilemma)로 규정했다. 즉 핵심산업·기술을 '촉진'(Promote)하고 전략자산을 '보호'(Protect)하며 동맹과도 '협력'(Partner)해야 하는데 이 3가지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런 트릴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도 최근 반도체, AI, 조선 등 전략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쏟아붓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 특히 트럼프 2기의 행보는 경제안보 트릴레마하에서도 나름 균형을 잡으려는 우리의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의 '아메리카 퍼스트 2.0'은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공급망과 기술을 무기화하는 전략적 보호주의다. 첨단·전략산업에 대해 다양한 지원을 늘리지만 모든 보조금에는 '메이드 인 USA'(Made in USA) 조건이 붙는다. 동맹국들엔 생산거점 이전과 기술 및 투자수익 공유를 요구한다.

    우리가 민관 차원의 다각적 협력으로 산업 및 기술 '촉진'의 성과를 내더라도 결국 미국의 '보호' 논리에 막혀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엔비디아 칩 26만장 공급합의에 대해 트럼프가 또 딴소리를 하는 게 단적인 예다. 전략자산 '보호' 역시 마찬가지다. 공급망이 흔들릴 때마다 원자재와 핵심소재 및 기술의 대외의존성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됐다. 미국은 리쇼어링이나 니어쇼어링에 역점을 두지만 한국 같은 수출 의존형 경제엔 한계가 많다.

    나아가 '협력'의 지형도 달라졌다. 트럼프 2기 들어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더욱 격화했다. 미국은 AI반도체와 첨단장비의 수출을 통제하고 중국은 자원이나 원자재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런 구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크지 않다. 기술과 안보 측면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수용하더라도 지리적·역사적 근접성에 따른 한반도 문제나 교역 및 분업구조상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처럼 핵심산업을 촉진하고 전략기술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도리어 협력의 공간을 제약하게 된다. 경제안보 트릴레마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균형을 잃은 선택은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APEC 회담에서 "실용적 중견국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호평을 들은 우리나라가 짊어져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경제와 안보, 또 미국과 중국의 줄타기를 넘어서 기술 및 공급망 협력을 위한 다층적이고 호혜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설계해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장보형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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