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9 (화)

    이슈 국방과 무기

    美 항모, 이례적 천천히 카리브海로 …트럼프의 깊어지는 ‘군사 작전’ 고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962년 쿠바 위기 이후 최대 해군력, 카리브해에 집결했지만

    폭격만으로 마두로 제거는 불가능

    트럼프는 ’끝없는 전쟁’ 비판했는데, ‘새 전쟁’ 일으키는 것도 부담

    제럴드 포드 항모는 시속 15노트(약 28㎞)로 서행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8척의 군함과 1척의 핵추진 공격 잠수함을 카리브해에 배치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투 플랫폼이라는 제럴드 R 포드 항모까지 지중해에서 카리브 해역으로 항해 명령을 내렸다. 이 항모는 10일쯤 베네수엘라 타격 거리 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전체 해군력의 20%가 집결하는 것이다. 이 탓에, 지금 지중해와 중동에는 미 항모가 한 척도 없다. 또 B-52, B-1 폭격기가 지금까지 네 차례 베네수엘라 연안으로 무력 시위(fly-by)를 벌였다.

    조선일보

    미국이 보유한 최신 항모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제럴드 R 포드 항모. 포드 함은 지난 4일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을 빠져나와 대서양을 시속 15노트로 건너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미 해군은 6일까지 드론 공격으로 모두 16차례에 걸쳐 트럼프 행정부가 마약밀매선이라고 주장하는 선박을 공격해 66명을 살해했다.

    따라서 이 정도 군사력 집결 목적이 단순히 마약 밀수꾼 소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 베네수엘라는 마약의 ‘유통 경로’이지, 생산국가도 아니다.

    미 군사력의 최종 목표는 베네수엘라의 독재자이자, 작년 7월 부정 선거로 세번째 대통령에 연임한 니콜라스 마두로 축출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트럼프는 1기때에도 ‘마두로 축출’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설령 마두로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이후 평화적으로 친미(親美) 성향의 민주 정부로 정권을 교체한다는 정교한 계획도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포드 항모가 계속 서행 중인 것도 이런 ‘군사 작전의 한계’를 반영한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가 최근 판치르 S1, Buk 미사일과 같은 다수의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Il-76 수송기를 통해 베네수엘라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만으로는 마두로를 쫓아내지 못한다고 판단하지만, 마두로를 몰아내는 데는 실패하고 미군 희생이 속출할지도 모르는 본격적인 육상 폭격 작전을 승인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력 집결의 최종 목표가 ‘정권 교체’인지, 압박을 통해 석유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이익 확보와 마약유통 단절이라는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인지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군사 작전의 최종 목표 오락가락

    트럼프는 의도적이든, 변덕에 의한 것이든 대외적으로 헷갈리게 하는 발언을 종종 한다. 10월 29일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옵션과 관련해 “육상(land)이 다음 번 폭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뒤에는 베네수엘라 내륙 공격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노(no)”라고 답했다.

    지난 2일 방영된 CBS 방송의 ‘60분(Sixty Minutes)’ 인터뷰에서도 “베네수엘라와 전쟁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I doubt it)”고 답했지만, “마두로 통치 기간이 얼마 안 남았느냐”는 질문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앵커가 “베네수엘라를 폭격하려는 게 사실이냐”고 재차 묻자, “그렇다, 그렇지 않다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6월에도 이란에 “핵협상 기한을 2주 더 주겠다”고 말했지만, 단 사흘 뒤 B-2 폭격기로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란의 정권교체가 목표가 아니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군사적 해결책 주도

    취임 후 트럼프는 마두로에 대해 ‘투 트랙(two-track)’ 접근 방식을 취했다. 하나는 리처드 그레넬 베네수엘라 특사로, 그레넬은 그동안 미국 기업의 베네수엘라 석유ㆍ광물자원 접근권 확보와 마약밀매 단속 강화를 위해 직접 마두로와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올해 초 베네수엘라에 갇혔던 미국인 6명이 풀려났다.

    그러나 9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다른 군사 보좌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상 회의로 그레넬에게 “마두로와 그만 대화하라. 새 방법을 시도하겠다”고 지시했다.

    이후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작전을 선호하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불법이민자 강경 단속을 주도하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비서실차장의 손을 들어줬다.

    쿠바계 이민 가정의 아들인 루비오는 남미 사회주의 정권이 친미 정부로 교체되길 염원하는 인물로, 그에게 마두로는 피델 카스트로 같은 존재다. 그에게 마두로는 대량 불법 이민을 초래해 미국을 불안정하게 하고, 중국ㆍ러시아에 경제적 거점을 제공하는 위험한 독재자였다.

    루비오 장관은 마약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트럼프의 관심을 사로잡고 대규모 군사력을 카리브해에 운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두로는 2013년 집권 이래 군부를 장악했고 부패와 탄압, 부정선거로 권력을 유지해왔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인 2019년 1월 당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로 국회의장이었던 후안 과이도를 밀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과이도는 그 전해에 있었던 대선이 부정이었다며 헌법에 따라 자신이 ‘임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지만, 과이도는 마두로에 맞서기엔 매우 ‘약체(弱體)’였다.

    2020년 가을, 트럼프는 그레넬에게 마두로 측과 비밀협상을 진행해 마두로의 ‘조율된 퇴진’을 추진했다. 그러나 마두로는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낮게 봤고 협상은 결렬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전쟁 선포’ 없이 암살?

    뉴욕타임스는 미 중앙정보국(CIA)가 합세한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은 ▲베네수엘라 군사시설에 대한 공습 ▲미 육군 델타포스와 네이비 실(SEAL) 팀 식스(Team Six)와 같은 최정예 특수부대를 투입한 마두로 생포ㆍ제거 ▲대(對)테러부대를 투입해 베네수엘라의 주요 공항과 석유 시설을 직접 장악하는 방안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마두로를 ‘합법적인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전쟁 선포’ 없이 살해할 수는 없다.

    1973년 제정된 미국의 ‘전쟁권한법(War Power Resolution)’은 이 미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이 60일 이상 전투행위를 하는 것을 금한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를 미국으로 코카인을 유입시키는 범죄집단의 두목인 ‘마약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지난 8월엔 마두로 체포에 5000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제거’가 2020년 1월에 있었던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Quds)군의 사령관 카셈 술레이마니를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암살한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술레이마니 암살’을 자신이 1기 때 거둔 최대 성과 중 하나로 여긴다.

    당시 트럼프 백악관은 “술레이마니가 미군과 외교관들에 대한 추가 공격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공격은 정당하다”며 “군사적 수단을 통해 이란의 정치 체제를 변경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이 공격은 헌법상 ‘전쟁’ 수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두로를 제거해도, 이후 친미 정부가 세워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는 타격 계획은 많이 세웠지만, 작전 성공 이후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통치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측근 보좌관들은 애틀랜틱 몬슬리에 “트럼프가 작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화당 내에선 군사 작전 압박만으로 마두로가 마약 밀매ㆍ유통을 줄이고, 미국의 베네수엘라 석유 개발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하고, 공정한 선거를 약속한다면 굳이 축출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천천히 가는 제럴드 포드 항모

    세계 최대 항모인 제럴드 R 포드 함에는 승조원 5000명과 F/A-18와 F-35C 등 75~90대의 전투기와, 정찰기ㆍ지원기 등이 함재돼 있다. 이 항모는 현재 시속 15노트(27.8㎞)의 느린 속도로 대서양을 건너고 있다. 포드 함과 같은 최신 항모의 최대 속력은 30~35 노트다.

    조선일보

    9월24일 북해에서 전개된 나토의 ‘넵튠 스트라이크 2025’ 훈련에 참여한 제럴드 R 포드 항모에서 F-18E 전투기 한 대가 이륙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0월24일 당시 지중해에 있던 이 항모의 카리브 배치를 명령했다.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허드슨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브라이언 크라크는 WSJ에 “이 항모는 애초에 카리브해 작전 시나리오를 대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서양을 건너면서 카리브해에서 수행해야 할 비행 작전 유형에 대한 숙련도를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미 함대가 카리브해에 떠 있는 지금, 마두로는 버티고 싸울지 아니면 도주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끝없는 전쟁’을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 역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맞고 있다.

    애너 켈리 백악관 부(副)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마약을 밀수하는 마약테러범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고, 나머지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샷 국제뉴스 더보기

    [이철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