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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순한맛-매운맛’ 야무지게 오간 3선 비서실장의 처신 [정치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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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국방송 유튜브 중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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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의 최대 화제 인물은 누가 뭐래도 송언석(국민의힘)·이기헌(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다만 이들은 언변이나 송곳 질문으로 화제에 오른 게 아니라 ‘배치기’로 일약 화제 인물에 등극했단 점에서 ‘주인공’이라기보단 ‘씬스틸러’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배치기의 주역들이 대부분 언론의 톱을 장식하며 떠들썩한 조명을 받을 때, 조용히 화제를 모은 인물도 있습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강 실장은 3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국감 숏츠’로 재미를 본 기억은 별로 없는 정치인입니다. 충남 아산이 지역구인 그는 당에 있을 때 원내대변인과 수석대변인을 모두 지냈을 정도로 언변에 막힘이 없지만 충청권 인사(?)인 만큼 말씨가 느리고 표현이 점잖아, 거친 공격수가 주목받는 국감장에선 그다지 눈에 띈 적이 없습니다. 그는 대체로 싸움을 말리고, 협상을 중재하는 간사 역할에 어울리는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수비수이자 ‘주장’으로 국감에 출전한 이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강 실장은 때론 특유의 여유로운 드리블로, 때론 전에 없던 날카로운 반격으로 국감 전반에 거쳐 대통령실의 주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 실장은 야당이 지적하는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 문제를 설명할 때 ‘배치기 사태’로 국감 내내 잔뜩 예민해져 있던 송언석 원내대표를 언급하며 “송언석 대표님과는 제가 함께 예결위 간사를 한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실, 검찰 등의 특활비를 삭감했던 이재명 정부가 왜 특활비를 책정했느냐’는 지적에 답변하며, 당시 함께 예산안을 심사했던 송 원내대표의 공감을 구하는 스킨십을 발휘한 것입니다. 강 실장은 “문제는 투명성과 공개성”이라고 밝혔습니다.



    강 실장은 또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 국감 증인 채택 논란 와중에 총무비서관에서 부속실로 인사 이동한 것을 두고도 “저도 3선 의원이고 야당 의원으로 질의했던 입장으로서 인사 타이밍에 대해 말씀하신 위원님들이 이해가 된다. 그런 정도의 의혹을 제기하실 수 있다”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무조건 대통령실의 반론을 밀어붙이기보다, 야당의 문제 제기도 수용하며 해명에 나선 것입니다. 국감 시작부터 여야 의원들이 서로 고성을 지르고 반말을 하며 깎아내리는 아수라 같은 상황에서 눈에 띄는 매너였습니다.



    강 실장은 보기 드물게 보수정당 의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50대 정치인입니다. 물론 12·3 내란사태 이후엔 그마저도 어렵게 됐겠지만요.



    반면, 야당 의원들과의 논쟁에서 거센 반격에 나서는 모습은 이전의 ‘강훈식 의원’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플레이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장면은 ‘김현지 때리기’에 나선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며 반격한 모습입니다. 주 의원이 국정과 무관한 김 부속실장 관련 의혹을 일방적으로 읊어나가자 강 실장은 “답변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나. 제가 피의자인가. 증인이면 증인으로 대우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일부 의원들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사건과 이태원 참사·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대응을 비교하며 정부를 비판하자 “재난의 경중을 따지는 게 책임자의 자세는 아니지만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들과 비교해서 국정자원 화재 같이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참사를 이용하지 않고 우리 정부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 대목을 지적해주시면 겸허하게 듣도록 하겠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이런 강 실장의 모습은 평소의 ‘순한 맛 강훈식’답지는 않습니다. 이재명 정부를 제대로 방어하고 나선 대통령실 주장의 모습에 지지층은 “강훈식을 다시 봤다”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매운 맛 강훈식’의 모습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차출론’ 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지지층의 기호를 읽은 전략적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대통령의 제1참모로서 책임감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속내가 무엇이거나, 국회에 최선을 다해 국정을 설명하고, 생산적 논쟁에 나서는 대통령실 참모들의 모습은 3년 만에야 다시 보게 돼 반가웠습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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