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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기자수첩] '연금 차별'과 '동반 탈락'…원칙 부재가 키운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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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만 더 내나"…사적연금과 다른 공적연금의 잣대

    합리적 대안, 보건복지부 내부서도 묵살…정책 결정 과정의 아쉬움

    연합뉴스

    건강보험료율 인상 (PG)
    [박은주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공정성'을 내걸고 2022년 9월 시작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 3년이 지난 2025년 11월 현재, 현장의 평가는 여전히 '불합리'와 '불형평'이라는 불만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수십 년간 성실히 공적연금을 부어온 은퇴자들 사이에서 깊은 실망감이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논란은 똑같은 노후 소득이라도 연금의 종류에 따라 건보료 부담이 달라지는 '연금 차별' 문제다.

    가령 국민연금으로만 월 200만원을 받는 은퇴자와 국민연금 100만원에 개인연금 100만원을 받는 은퇴자가 있다고 하자. 손에 쥐는 돈은 같지만, 건보료는 전자가 훨씬 더 많이 낸다.

    현행 체계가 공적연금 소득은 부과 대상으로 삼으면서,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같은 사적연금 소득은 사실상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믿고 국민연금에만 의지했는데,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는 탄식이 나오는 지점이다.

    더욱이 '동반 탈락' 규정은 불합리의 극치라는 지적이다. 2022년 9월 개편 이후 공적연금 소득(연 2천만 원 초과)으로 피부양자에서 탈락한 31만여 명 중 11만6천여 명(37%)은 정작 본인 소득은 없는 '동반 탈락자'다. 남편이 기준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소득 활동이 없던 아내까지 덩달아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가 돼 보험료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재산 기준은 부부 개별로 따지면서 소득 기준만 '부부 공동'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 잣대이기도 하다.

    정책 당국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내부에서도 이런 불합리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됐다고 한다. 가령,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급여에 2천만 원을 우선 기초공제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적용하자는 안이다.

    이는 사적연금과의 형평성을 조금이나마 맞출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런 합리적인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등 타 부처와의 역학 관계 속에서 정작 국민의 입장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개인연금을 옹호하니 (사적연금은) 받아주고 국민연금은 차별했다"며 "아무런 철학 원칙과 기준이 없었던, 정책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연금에 대한 차별은 불신의 원천"이라며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원칙과 기준이 확고하게 서 있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책에 담겨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공정성'과 '형평성'이 흔들리고 있다. 정책 추진의 명분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야말로 행정의 본분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고,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바로잡아 꼬인 매듭을 푸는 용기가 필요하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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