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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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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만원 때문에…"살려주세요" 6살 소녀도 생매장, 일가족 살해한 일당[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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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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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1990년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사진=KBS뉴스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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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1월 9일. 친척 결혼식에 가던 일가족 4명이 대낮에 납치돼 생매장당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돈을 빼앗기 위해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4인조 강도들의 소행이었다. 이들은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6살 아이를 비롯해 피해자들을 모두 살아있는 채로 묻어 대한민국을 경악케 했다.

    이날 오후 1시경 경기도 양평군 6번 국도.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류모씨(당시 54세). 류씨가 운전하는 이 차량에는 그의 어머니 김씨(81세)와 이모 김씨(74세), 외손녀 최양(6)이 타고 있었다.

    갑자기 류씨의 차량 앞을 막아서는 다른 차량. 이 차량 안에는 범인 이모씨(당시 31세, 전과 8범), 오모씨(31세, 전과 5범), 윤모씨(31세, 전과 6범), 그리고 이씨의 애인 심모씨(22세) 등 4명이 타고 있었다. 남성 3명은 모두 공갈·강도·폭행 전과자였고 교도소 동기로 만나 범죄를 계획했다. 심씨는 전과가 없었다.

    범인들은 일가족을 납치해 손발을 결박하고 입에 재갈을 물린 뒤 트렁크에 가뒀다. 6살 아이는 심씨의 품에 안겨 뒷좌석으로 옮겨졌다. 현금 20만원을 강탈한 범인들은 전날 민박집에서 빌린 삽 두 자루를 들고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

    범인들은 류씨에게 3000만원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살해했다. 이씨와 윤씨는 할머니 둘을 낭떠러지에서 굴려 떨어뜨렸고, 류 씨의 목을 졸랐다. 마지막으로 오씨가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6살 아이의 옷을 벗긴 채 생매장했다. 범인들은 모두 대마초를 피워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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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의 주범 이모씨가 가슴에 총상을 입고 대전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과다출혈로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KBS뉴스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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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검 결과 피해자 4명 모두 호흡기에 흙이 들어가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매장당한 것. 범행 직후 범인들은 피해자의 차량 등 2대에 나눠 타고 안양으로 도주해 사창가와 나이트클럽으로 가 유흥을 즐겼다.

    사건 발생 하루 만인 11월 10일 오후 1시 20분, 경찰은 범인들이 탄 차량을 발견하고 실탄을 발사하며 추격에 나섰다. 오씨와 심씨는 바로 체포됐다. 이씨와 윤씨는 도주 중 5중 추돌사고를 냈다. 윤씨는 총상을 입고 도주했다가 이틀 뒤 서울에서 체포됐다. 주범 이씨는 가슴에 총상을 입고도 도주했으나 대전의 한 아파트 옥상에 은신하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이씨의 시신은 11월 12일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의 첫 범행은 이 사건 10일 전인 10월 28일 강릉에서 벌어졌다. 신혼부부를 납치해 강도짓을 한 뒤 피해자를 묶어두고 도망쳤다. 이후 피해자의 차를 훔쳐 몰고 다니던 중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도난 차량이라는 게 들통났고, 경찰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달아났다. 이들은 2차 범행을 저지르기로 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피해자들을 모두 살해하기로 했다.


    고작 20만원 때문에 '잔혹범죄'…국민적 공분

    언론을 통해 이 같은 범행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11월 14일 서울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수많은 시민이 참석해 분노와 애도를 표했다. 6살 딸과 아버지, 할머니, 이모할머니 등 4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최양의 어머니. 그는 호소문에서 "불러도 대답 없는 우리 딸. 초롱초롱한 눈망울, 순진무구한 웃음소리, 이 모든 행복한 모습이 흙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영구차에는 '구멍 뚫린 민생치안 국민은 누굴 믿나'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기조 속에서 재판은 신속히 진행됐다. 사건 발생 한 달도 안 돼 1990년 12월 4일 사형이 구형됐고, 1991년 3월 5일 사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재판 과정은 논란투성이었다. 변호인이 도착하기 전에 인정신문과 검사 주신문이 끝났고, 공판조서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기재됐다.

    법원은 이듬해 3월 피의자 3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윤씨는 1992년 12월 29일, 오씨는 1994년 10월 6일 사형이 집행됐다. 당시까진 사형이 집행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장기와 사체를 기증했다. 오씨는 "여론에 의해 심증으로 재판한 것을 부당하게 생각한다"며 마지막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심씨는 살인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됐고, 8년 복역 후 1998년 가석방됐다. 출소 후 서울예대 문창과에 입학해 공부했으나 위암으로 사망했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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