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흔히 보게 되는 기술적 지표 중 학문적으로 그 효과가 검증된 것은 거의 없다. 그 유일한 예외가 대수효과(Big Figure Effect)로 다우존스지수의 경우 90년 이전 100단위, 이후 1000단위에서 심리적 저항선(psychological price barrier)이 형성되는 것이 검증되었고 이후 많은 주가지수에서 유사한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관찰되었다.
대수에 따른 가격 저항선은 일종의 중력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코스피가 3800대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4000이란 대수에 근접해 있을 때 지수는 4000에 빠르게 도달하게 된다.
반면 일단 4000을 넘기게 되면 변동성이 증가하면서 4000 근처에서 등락을 거듭한다. 4000이란 숫자가 중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중력효과의 요인은 매물대가 대수 근처에 몰리는 현상 때문으로 실제 지정가 주문을 분석해보면 매물이 그 근처에 몰려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투자자들이 1000단위의 눈에 뛰는 숫자(number)를 매수나 매도의 근거로 설정하는 '닻효과(anchoring effect)'라는 인지적 편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코스피가 4000선을 돌파한 이상 그 중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치 로켓이 대기권을 탈출하려면 최소 마하 34의 속도가 필요한 것처럼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당정이 지수 5000을 천명하고 있는 가운데 4000이란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 셈이다. 이번 지수 상승은 상법개정과 주주환원 제고라는 정책적 요소에 정부와 여당이 주가 상승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이루어졌다. 낙후된 지배구조의 개선에 따른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다.
증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중 한 가지가 상장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개편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맛없는 한정식 집과 같다. 종목이 3000개에 육박하면서 가짓수는 많지만 정작 손이 갈 만한 반찬이 별로 없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6배에 달하는 미국의 상장 종목 수가 4600개 정도인 것을 보면 얼마나 가짓수가 많은지 알 수 있다. 단지 맛만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상한 음식도 많다. 상장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이 21.8%에 이른다. 여기에 그나마 나은 코스피로 국한하더라도 배당성향은 23% 수준에 불과하다. 돈도 못 벌고 벌어도 주주환원에 인색한 상한 반찬이 무더기로 깔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한 반찬이 많은데 식욕이 나겠는가? 차라리 가짓수를 줄이더라도 맛있고 건강한 반찬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그 한정식 집은 성공할 것이다. 수익성과 함께 투명한 지배구조, 주주환원율이 높은 기업들만 상장이 되도록 상장심사 및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즉 상장도 힘들지만 상장 유지도 어렵다는 경각심을 대주주나 경영자들이 인식하도록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혁신기업, 특히 지식 기반의 혁신기업이 출현해 대기업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었던 종목 중 지금까지도 10위권을 유지하는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새로운 분야, 신기술을 탑재한 혁신기업들이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주가지수를 끌어올린 주체는 4%에 불과한 이들 혁신기업이었다. 우리 증시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계기업의 절반 이상이 오래된 제조업이다. 이제는 새로운 반찬이 밥상 위에 올라와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