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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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 논설위원
눈이나 비가 오면 교통사고 위험이 더 커진다. 하지만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은 궂은 날을 ‘돈을 벌기 좋은 성수기’로 인식한다. 장마철 등에 30% 이상 붙는 기상 할증 인센티브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노동자일수록 더 그렇다. 알고리즘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배달 단가는 위험을 키운다. 배달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다르게 배정되고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단가 책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알고리즘은 배달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로 인한 위험은 노동자의 몫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승섭·이가린 연구팀이 2023년 배달 플랫폼 노동자 17명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결과다. 플랫폼 배달노동은 원하는 시간에 휴대폰 앱을 켜서 업무를 시작하고 그만하고 싶을 때 끄면 된다. 얼핏 보면 매력적일 것 같은 일자리는 사실상 ‘쉼 없는’ 노동이 되기 일쑤다. 밥을 먹으면서도 휴대폰을 켜놓고 배차 상황을 확인하고, 마치 주가 등락을 보듯 쉬지 않고 앱 화면에 몰입한다. ‘피크타임’에 경쟁이 붙으면 심리적 압박에 몰리고 그만큼 과속과 신호 위반 등 위험한 운행이 많아진다. 노동자들은 위험을 피하는 대신 감수한다.
연일 새벽배송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그런데 야간노동 그 자체로만 논점을 좁혀선 안 된다.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는 고몰입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얼마나 위협하는지가 핵심이다.
새벽배송은 알고리즘이 만든 유통의 혁신으로 불려왔다. 물류센터→집하지→배송지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동선은 물론이고 기계·로봇의 업무 배분까지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설계한다.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서도 전날 밤 주문한 물건을 아침이 오기 전에 배송하기 위함이었다. 소비자가 잠든 사이에 행해지는 새벽배송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건설 현장이나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추락·끼임사를 보면서 갖는 긴장감도 없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어렵다.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통제는 업무 강도를 끌어올린다. 택배기사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실상 물량 조절이 자유롭지 않고 일감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불안에 무리한 노동도 감내하게 만드는 탓이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가린(환경보건학 박사과정)의 ‘새벽배송 노동자 1021명 실태조사’(2024년 10월)를 보면, 83.8%가 앱 등에 의해 업무 속도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최소한의 성과 또는 별점을 유지하지 않으면 일감이 자동 취소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75.4%가 그렇다고 했다.
밤샘근무는 집중력 저하와 반사 신경 감퇴 등으로 사고 위험을 높인다. 앞서 실태조사에서 942명을 추려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한달간 6.1%가 교통사고를 겪었고 34.1%에게는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거나, 자고 일어나도 피곤한 수면장애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만성 피로와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 홀로 깜깜한 도로를 운전해서 다니다 보니 고립감이 커지고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다른 직종에도 밤샘근무가 있다. 그런데 새벽배송은 그중에서도 유독 위험한 노동이 됐다. 새벽배송 노동자의 수면장애는 전체 야간노동자(근로환경조사)에 견줘서도 2.6~3.1배 높았고 우울증도 2.8배나 높게 나타났다. 이를 분석한 연구팀은 고정 야간근무가 많고 최소한의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를테면 간호사의 경우 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대체휴가를 쓸 수도 있지만 새벽배송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정급여를 받는 이들보다 건별 수수료를 받는 경우 수면의 질은 더 나빴다. 쿠팡의 경우, 택배기사들은 물류 자회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으로 나뉜다. 노동법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고용직은 주당 평균 60~70시간 일해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가뜩이나 건강에 좋지 않은 야간노동이 고강도 업무 강도와 맞물려 과로사 위험을 높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쿠팡 새벽배송을 하다가 쓰러진 정슬기씨는 숨지기 전 12주간 주당 평균 73시간21분을 일했다.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판단하는 정부 고시 기준을 훨씬 웃도는 강도였다. 그는 회사의 배송 압박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했다.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생전 카카오톡 대화였다. 특정 기업에서 반복되고 있는 과로사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워킹맘의 기저귀 배송은 어떡하냐는 걱정을 같이 해주기엔 상황이 다급하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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