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집무실에서 장병들과 사진 찍으며 격려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 韓과 깊은 인연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미 해병대는 1775년 11월 10일 필라델피아에서 창설됐다. 영국 식민지이던 미국 13개주(州)가 국왕의 폭정에 항거해 독립을 선포하고 영국군과의 전쟁에 돌입하기 꼭 1년 전의 일이다. 오는 2026년 7월 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 꼭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이 10일(현지시간) 미 해병대 창설 250주년을 기념해 백악관 집무실에서 해병대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NS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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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합중국 해병대 창립 250주년 기념일’이란 제목의 성명서에서 “2세기 반 동안 미국의 용기, 규율, 단결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힘으로 서 있다”는 말로 해병대에 찬사를 바쳤다. 이어 “해병대는 우리 공화국의 탄생기부터 현대의 여러 도전에 이르기까지 항상 어떤 임무도 완수하고, 어떤 해안도 방어하며, 어떤 적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왔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는 독립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및 이라크 전쟁에서 해병대가 세운 공로를 나열했다. 그는 “미 해병대가 한국에서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다”고 밝혔는데 바로 6·25 전쟁을 언급한 것이다.
미 해병대는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당시 미 해병 1사단을 실은 2진이 일본 고베에서 출항해 인천 앞바다까지 이동한 뒤 상륙작전에 나설 전체 함대와 합류했다.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의 선봉으로 인천에 상륙한 미 해병 1사단은 이후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장진’(JANGJIN) 뒤에 괄호 하고 ‘초신’(CHOSIN)을 병기한 점이 눈에 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1950년 11월 27일 시작해 12월 10일까지 14일간 이어진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와 뗴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북진하던 미 해병 1사단이 함경남도 개마고원 남쪽 장진호 부근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의 기습 공격을 받으며 전투가 시작됐다. 미 해병대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 중공군과 사투를 벌인 끝에 포위망을 뚫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군 등 유엔군이 사용한 지도에는 장진(長津)이 일본식 발음인 ‘초신’(Chosin)으로 표기돼 있었는데,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 해병대 소수정예 병력은 오늘날에도 ‘초신 퓨(Few)’로 불린다.
1995년 7월 미 수도 워싱턴에 들어선 6·25 전쟁 참전 기념 공원은 미군 병사 19명을 형상화한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한반도라는 낯선 공간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심에 사로잡힌 채 행군하는 19명 가운데 육군이 14명, 해군·공군이 각 1명씩이고, 나머지 3명은 해병대원이다. 미 해병대가 육군 다음으로 많은 인원을 한국에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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