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사람이 야간에 일하는 것이 일상처럼 익숙하게 된 것은 전기가 발명된 이후인 고작 수백, 수십 년 전부터다. 오랜 기간 햇빛에 적응해 온 인간이 햇빛 없는 야간에 일하면 생체리듬이 깨지거나 건강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은 국민 상식이다. 이러한 상식을 문제 삼아 민주노총은 새벽배송 금지를 주장한다.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맞다. 야간교대근무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지정한 발암 위험도 1, 2A, 2B, 3, 4급 가운데 2A급에 속한다. 그러나 이 분류는 야간근무 자체가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는 '발암 가능성'이 있는 행위로 평가된 것이라는 의미다. 2A급보다 위험한 '1급 발암물질'로 자외선(햇빛), 미세먼지, 가공육 등이 있다. 이것들과의 접촉도 바로 암에 걸린다는 것이 아니라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건설업 근로자, 농부와 어부는 '발암물질 1급'인 햇빛을 종일 쐰다. 민주노총의 주장대로라면 택배업이 아닌 건설업, 농업 및 어업 종사자의 '건강권 보호'가 더 시급할 것이다.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다.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시스템 개선 논의에 대해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중간 논의 단계는 무시하고, 아예 특정 시간대인 0~5시까지 모든 택배 업무를 멈추라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조사한 중대재해 발생 건수 5년 치를 보자. 전체 중대재해 인원의 40.9%인 1839명(전체 4500명)이 오전 9시~11시, 오후 1~3시에 사고를 당했다. 이 기간 4~5월 중 발생한 유형은 건설업은 추락사(216명, 53.2%), 제조업은 끼임(61명, 33.3%) 사고가 많았다. 3년이 지난 올해 2분기도 사고 사망자 287명 중 건설·제조업 사망자(205명, 71%)가 가장 많다.
민주노총의 '특정 시간대 근로금지'가 유일한 대안이라면 주간에 일하는 건설, 제조 사업장은 모조리 문을 닫아야 한다. 오전 9시~오후 3시까지 사망하는 근로자가 많으니 주간 시간대의 공사 현장은 없어져야 하고, 전국의 빵·된장 공장도 근무를 금지해야 한다.
정치권과 노동계가 주도하고 있는 '사회적대화기구'라는 것도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전국 택배기사 10만명 중에 민주노총 택배노조 가입 인원은 6000~7000명뿐이다. 정작 택배기사 93%가 '새벽택배 금지'를 반대한다는데 택배기사의 의견은 묵살되고 소비자, 소상공인, 학계의 참여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새벽배송은 영세 소상공인들에게는 물론,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에게는 새벽배송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필수 서비스다. '새벽배송 금지령'을 내린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온 국민이 민주노총의 억지로 불안에 떠는 판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외치는 정부는 정작 이 혼돈의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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