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시 금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구술사 기록집 ‘회로를 이탈하다’ 제작에 참여한 기록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앉아있는 모습. 왼쪽부터 임다윤, 차성덕, 심지안, 김우. 이진희 스튜디오알 활동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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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10만원을 넘어간 사실이 속보로 나왔어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어떤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한 사실이 속보로 나올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오마이뉴스 기자 유지영씨 말이다. 유씨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반올림이 지난달 29일 출간한 피해자 구술사 기록집 ‘회로를 이탈하다’ 제작에 참여한 6명의 기록자 중 1명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강타한 산재라는 경험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 쉬이 잊히는 동안 그 사람이 일하다 병을 얻은 기업의 주가는 큰 관심을 받는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유씨의 ‘상상력’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반올림이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삶을 그들의 입을 빌려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같은 문제 의식에서였다. ‘직업병 피해자’라는 호명 뒤에 가려진 개개인을 드러내고, 산재가 헤집어놓기 전 이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말했다. 하지만 2명의 활동가로는 역부족이었다.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모두 5명이 자원했다. 그렇게 기록팀이 꾸려졌다. 기록 작업을 이끈 임다윤 반올림 활동가를 포함한 기록팀 6명은 올해 1월부터 반년 남짓 15명의 산재 피해자와 유가족을 만났다. 인터뷰 시간만 41시간,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 울산, 제주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출간기념회가 열린 지난달 29일 기록자 5명(김우, 심지안(필명), 임다윤, 유지영, 차성덕)을 반올림 사무실에서 만났다.
처음 기록 작업에 참여하게 된 데는 ‘돕고 싶다’는 마음 외에 개인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영화감독인 차씨는 “예술 창작이라는 영역에 갇혀서 사람의 욕망이나 사건에 대해 쓰지만, 아이템으로만 접근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유씨 역시 “단발적으로 기사 하나를 쓸 때와 달리 깊이 알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유씨는 기록 과정을 ‘마크맨’에 비유했다. “기자들은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 1명의 마크맨이 되어 취재를 한다. 우하경님의 마크맨이 됐다는 생각으로 반년을 보냈다”며 “인터뷰 때 외에도 기자회견을 하거나 후원주점을 열거나 집회에 참여할 때 따라다니면서 짧게짧게 한마디씩 물어보고 응원도 하며 가까워졌다”고 했다.
자원 기록자 다섯과 반올림 활동가
반년 남짓 피해자·유족 15명 인터뷰
산재 피해가 헤집기 전 삶 보여주고
다시는 같은 아픔 발생 않도록 기획
“기록은 동료가 되어 주는 과정”
“질병 이겨나가는 모습, 큰 울림”
다른 삶을 살아온 피해자나 유가족 얘기를 듣는 일은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이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사망한 최상미씨 유가족을 만나며 심씨는 만나보지 못한 최씨가 남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여동생인 최상희님과 상미님이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온 얘기를 듣고 상미씨가 어떤 분이었는지 그려지더라”며 “특히 개인적으로 투병하는 어머니가 섬망 증세를 겪으면서 고생한 경험이 있다 보니 유가족과도 연결감을 느꼈다”고 했다.
차씨도 “기록 작업이 아니었다면 말 한 번 섞어보지 않았을 사람들과 만나고 그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연결고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인터뷰한 임휘준씨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변변한 안전장치 없이 낮이고 밤이고 설비 정비에 투입됐지만 그는 열심히 일한 게 후회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하는 게 즐거웠고, 인정받는 것도 좋았다”고 했다. 차씨는 “휘준님이 일을 대하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나 일로 자아실현을 하고 주변에서 인정받는 데서 보람을 느낀 모습은 사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고 저와도 닮아있다”고 말했다.
기록은 또한 산재 피해를 당사자 시선에서 바라보는 경험이었다. 유년기부터 입사하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사를 알고 듣는 직업병 피해 경험은 더는 ‘남의 일’일 수 없었다. 색소폰 불기를 좋아하던 초등생 이승환은 스무살 나이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런 걸까” 생각했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이나 림프종, 백혈병을 진단받은 피해자들은 “세상을 원망했다”거나 “눈물도 안 나고, 결과가 잘못 나온 거 아닌가”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2명의 직업병 피해자를 인터뷰한 김씨는 “먼 곳의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내 곁의 가슴 아픈 일로 다가왔고, 이런 느낌이 많은 사람들 가슴에도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유씨는 “취재할 때는 취재원과 마주보고 문답을 한다면, 기록 작업은 옆에서 동료가 되어주는 과정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질병을 견디고 삶을 살아내는 모습도 큰 울림을 줬다고 기록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차씨는 “제가 만난 모든 분이 남 탓하거나 회사 탓하며 원한이나 분노에 잠식되어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인간 보편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도 “내 피해를 드러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게 피해자들 공통의 마음”이라며 “이분들이 이렇게 부품처럼 사라져 갈 게 아니라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사람들 가슴에 가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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