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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코스피 4000 시대…투자자의 마음이 잊은 것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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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한겨레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주식시세표 싣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어. 그런데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시대가 바뀌었고 독자도 원한다고. 언제까지 운동권 기관지처럼 굴 거냐고. 반대도 많았지만 결국 싣게 됐지.” 1991년 초의 어느 날, 당시 한겨레 논설위원이던 경제학자 고 정운영 선생이 세미나 뒤풀이에서 토로한 말이다. 물정 모르는 학생이었지만 귀 기울이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 농민, 여성 등 기존 언론이 소홀히 다루는 부분에 더욱 깊은 관심”을 표방한 한겨레였다. 주식시세표를 싣지 않는 건 기존 언론과의 자부심 섞인 차별점 중 하나였다. 그 한겨레가 그해 1월 초부터 투자자를 위해 주식시세표를 싣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은 일이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았다.



    1980년 1월4일, 주먹구구의 한국 주식시장에 종합주가지수가 도입됐다. 코스피 기준점은 100이었다. 1985년까지 연평균 증감률이 마이너스 4.4%에서 13.9% 사이를 등락하던 주가지수는, 1986년부터 매년 40~90%까지 폭등했다. ‘3저 호황’ 덕분이었다. 1989년 3월31일, 드디어 1000선을 넘겼다. 1980년 80만명쯤이던 개인투자자가 이해에 400만명이 됐다. 포항제철, 한국전력 등을 민영화하면서 국민주 공모를 한 영향도 컸다. 개미군단이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대거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겨레의 주식시세표 게재는 이런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2024년이 되자 주식투자자는 1400만명에 이르러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에 가까워졌다. 한국의 개인투자자는 직접 투자 비중이 매우 높고 투자 행태도 공격적이다. 수수료 내며 증권사 좋은 일 하느니 내 판단으로 크게 벌고 싶어 한다. 이재명 정부 들어 급상승을 시작한 주식시장이 급기야 4000선을 넘나들면서 날마다 성공 투자 소문이 넘친다. 누구는 노후자금을 마련했다고 하고, 누구는 젊은 나이에 ‘파이어족’이 됐다고 한다. 가만있다가 나만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 ‘포모증후군’에 너도나도 나선다. 부동산에 견줘 진입 장벽이 낮으니 청년세대까지 가세한다. 빚내서 투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투자자는 1400만명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부동산이나 코인보다는 주식시장에 돈이 쏠리는 쪽이 낫다는 의견이 많기는 하다.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대세 상승장에서는 대다수 개미도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부동산 투기보다 불평등 문제가 덜하다는 시각도 있다. 일리는 있지만 과열되면 문제인 건 마찬가지다. 성공한 개인투자자들이 유명해서 그렇지 전체 경향은 명확하다. 개인의 성공 확률은 낮고, 상당수는 손해를 입는다. 정보도 자금도 부족한 개인은 기관, 외국인처럼 장기투자, 분산투자를 통해 시장의 급변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렵다. 단기 고수익을 좇아 단타 매매에 집중하다 원금까지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같은 대세 상승기에도 인버스며 곱버스며 큰 차익 노리다 손해 보는 이들이 많다. 한국 투자자들이 유난스러운 면이 있지만, 개인투자자의 본질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들의 손해 위에 큰손들이 큰돈을 번다. 그리고 대세 상승도 끝난다. “이번에는 절대 거품이 아니다”라는 확신은 “결국 거품이더라”라는 확인으로 끝난다. 거품의 크기가 문제일 뿐, 큰 거품이 터지면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큰손들은 미리 빠지지만 개미가 고점에서 빠질 확률은 매우 낮다. 위험을 분산하지 못한 탓에 손해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도 빈익빈 부익부다. 성공한 개인투자자의 신화 아래 자산 불평등은 더 커진다.



    이걸 몰라서 사람들이 자산 투자에 뛰어드는 건 아니다. 노동으로 희망을 도모하는 게 부질없어 보이니 나서는 것이다. “이대로 살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더해 점차 투자자로 정체성이 바뀐다. 좋은 일자리, 연대하는 삶에 대한 관심은 있다가도 줄어든다. 일봉, 주봉, 월봉 차트 공부하며 리딩방 따라가기에도 바쁘다. 투자자에게 좋은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최선은 대다수 국민이 투자자로 성공하는 세상이다. ‘동학개미운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맞서 깨어 있는 투자자를 상징하는 단어다. 대주주와 세력의 농간에 맞서 건강한 자본시장을 추구한다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물론 투자자로서도 다른 세상을, 이를테면 노동자의 단결이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바랄 수 있다. 그 바람에 내 수익률이 떨어지면 갈지자 걷던 마음은 수익률로 향하기 마련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하는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근본 대안은 못 된다. 이런 데 개의치 않으며 큰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빤히 보이는 탓이다.



    정치권도 이런 열망에 호응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소득 과세 유예 등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이 지난해 12월10일이었다. 윤석열의 내란으로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다. ‘내전’ 중이던 양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별반 논란이 없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고, 투자는 투자인 것이다.



    1999년 말의 일이다. 직장 다니던 친구와 담소 중에 주식 이야기가 나왔다. 대표적인 전자회사 주식을 샀다가 꽤 큰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고학으로 졸업한 친구라 나는 정말 기뻤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대만에서 지진이 나서 수천명이 죽었잖아. 공장들도 많이 파괴됐고. 그때 무슨 생각 들었는지 알아? 경쟁 회사가 저리됐으니 내 주식 오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무서워졌어.”



    격렬한 논쟁 끝에 주식시세표를 싣기 시작한 한겨레는 2006년 봄, 조용히 게재를 중단했다. 다른 신문들도 비슷했다. 주식시세표는 그렇게 사라졌다. 대신 우리 손안에, 마음속에 늘 자리 잡았다. 주식투자에 성공해서 괴롭다는 이를 만나는 일도 어느덧 사라졌다. 투자는 공기를 마시듯 일상이 됐고, 더 이상 자기 내면을 성찰할 일도 아니게 됐다. 이렇게 모두가 투자자인 세상이 됐는데, 사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쯤은 여전히 주식도 없고, 투자할 돈도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이 두 조각 나 있고, 나는 이편에 서 있다. 이 사실이 나는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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