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 심각해진 한국
여름·겨울 이어 가을마저 기후 급변
춘천마라톤서 단풍 보기 힘들어져
올해 10월 기온·강수량 역대 1위
생산성보다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
그래픽=김성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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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날씨에 관심을 기울인다. 추워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1993년부터 2024년까지 수능 시험 당일 영하를 기록한 날은 8번에 불과했다. 수능 날 춥다는 속설은 해마다 11월 둘째 주에는 일교차가 크고 기온이 빠르게 낮아지기 때문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면서 봄·가을은 더 짧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제 가을마저 급변하고 있다. 올해 10월 날씨는 평균 기온과 강수량, 강우 일수, 상대습도 모두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평균 기온은 16.6도로 평년보다 2.3도 높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다. 10월 14일 서귀포 아침 최저기온은 25.5도였고 관측 이래 가장 늦은 열대야가 발생했다. 10월엔 비도 자주, 많이 내렸는데 10월 강수량(173.3㎜)과 강수 일수(14.2일)는 사상 최고치였다.
◇춘천마라톤에 단풍이 사라졌다
극심한 가뭄을 겪던 강릉에는 10월 3일부터 24일까지 날마다 비가 내리면서 1911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긴 연속 강우 일수를 기록했다. 반면 태풍은 하나도 없었고, 일조 시간은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9월까지 긴 여름과 습하고 햇볕이 부족하며 일교차가 크지 않은 10월이 겹치면서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은 볼품없어졌다.
해마다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열린 춘천마라톤 현장 사진을 비교해 봤다. 2023년 10월 29일 춘천은 최저기온 6도, 최고기온 18도의 선선하고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참가자들이 의암호 옆을 달린 그날 단풍은 절정이었다. 그런데 올해 10월 26일 춘마 당일 그 구간 사진을 보면 단풍이 거의 도착하지 않았다. 10월 날씨가 이례적으로 따뜻했고 비가 잦았고 일교차가 작았기 때문이다.
◇가을 장마로 농업 큰 피해
달라진 가을 날씨의 대표는 강수량 증가다. 45년간 가을철 평균 강수량은 276㎜인데 최근 10년 중 7년은 그 이상으로 비가 내렸다. 이 ‘가을 장마’는 농업을 타격했다. 벼가 이삭을 맺고 알차게 여물어야 할 계절에 많은 비가 내리자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당연히 수확량이 감소했고 품질도 떨어졌다. 깨씨무늬병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쌀을 대체하라고 정부가 파종을 권장한 논콩도 곰팡이성 병해로 큰 피해를 입었다.
가을 장마로 수분을 과하게 흡수한 사과는 껍질이 터지는 열과 현상이 나타났다. 대추는 탄저병으로 큰 피해를 봤다. 배추와 브로콜리는 무름병으로 썩어 들어갔다. 트랙터로 논을 계속 갈아보지만 땅은 쉽게 마르지 않았다. 농민들이 기댈 농업수입안정보험과 농업재해보험도 큰 쓸모가 없었다. 수확량 감소나 가격 하락으로 인한 농가 손해를 보전해 주는 수입안정보험은 기준 가격이 턱없이 낮아 보험금 지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농업재해보험도 가을장마에 대한 보상 범위가 너무 좁은 게 문제다.
◇정책의 무게를 기후적응으로
기상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 잦은 비로 일조량이 부족한 가을, 한파가 극심한 겨울은 농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변화하는 기후에 맞는 품종 개발과 보급을 서둘러야 하고, 이에 맞춰 농법도 수정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별 정보를 제공하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 가입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농작물 재해보험제도는 태풍·냉해 등 전통적 자연재해에서 이상기후 중심으로 개편하자. 더 중요한 것은 농업 정책의 무게중심을 생산성 향상에서 기후 적응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단풍 없는 10월’은 변화하는 미래를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기존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하늘만 쳐다보며 내년엔 상황이 나아지겠거니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적응은 단순한 현상 유지가 아니다. 기후 변화는 극복해야 할 도전이자 뜻밖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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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밀 기상정보 서비스
고령농 많아 가입률 5%
농업은 기상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정확한 기상 정보를 빨리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기상청 정보는 넓은 지역이 대상이고, 가장 세분화된 동네예보도 5x5km 범위다. 농민에게는 자기 경작지를 대상으로 한 정밀한 기상 정보가 필요하다.
농촌진흥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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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 2016년부터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상청 동네예보 정보를 재분석해 30~270m 격자 단위로 맞춤형 기상재해 정보와 대응 지침을 준다. 농민들이 필지별로 등록해 놓으면 3일간의 기상예보와 함께 40개 작목을 대상으로 기상 위험과 대처 방안을 알려준다. 이 서비스는 현재 168개 지자체에 실시되고 있으며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전북 무주의 농민은 경작 중인 과수원 위치를 등록한 뒤 휴대전화로 전달된 저온 위험 예측 경보에 따라 온수 미세 살수 장치를 미리 가동해 개화기 저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가입률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2021년 4.97%였던 가입률은 2025년 5.42%로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고령농이 많은 상황에서 회원 가입 등 활용 문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 가입 절차를 없앴지만 가입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농업재해보험 가입 시 자동으로 등록되도록 하는 등 개선안이 요구된다. 변화하는 기후에 대한 농업 분야의 적응은 품종 등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이용자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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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북극 소용돌이 남하로 혹한 예고
날씨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1년 러시아에 겨울이 평년보다 빨리 찾아오지 않았다면, 1950년 한반도의 겨울이 그렇게 혹독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는 그해 겨울 날씨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혹한이 온다면 러시아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던 유럽연합(EU)은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해 겨울은 큰 추위가 없어 난방 수요는 평년을 밑돌았고, EU는 비축해 둔 천연가스와 긴급 수입한 LNG로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겨울 날씨가 사계절 중 가장 중요하다. 에너지 및 곡물 작황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은 난방용 에너지 수요 확대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파종 후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에 수확하는 겨울 밀의 경우 혹한이 찾아올 경우 수확량이 감소하고 가격이 치솟는다.
겨울철 날씨 예측 방법 중 하나는 고도 12~48㎞에 위치한 적도 상공의 성층권에서 발생하는 풍향의 변화를 관측하는 것이다. 28~29개월을 주기로 동풍과 서풍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을 준격년 주기진동(QBO)이라 부른다. 적도 상공에서 이러한 진동은 북극 상공의 차가운 공기층인 북극 소용돌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QBO에서 동풍이 나타나면 북극 소용돌이가 불안정해지면서 남쪽으로 찬 기운이 확장돼 북반구에 한파나 혹한을 초래하곤 한다. 반대로 서풍이 나타나면 북극 소용돌이는 안정적 상태를 유지해 상대적으로 겨울이 온화하다.
올해는 동풍이 관찰되고 있어 추운 겨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의 겨울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무조건 평소보다 더 춥고 눈이 많이 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상청 3개월 전망에 따르면 12월과 1월은 기온 변동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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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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