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7)씨는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주식에 2000만원을 투자했다. 연말 이사를 앞두고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7000만원을 빌렸는데 이 중 일부를 주식 투자에 썼다. 김씨는 “주변에서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에 박탈감이 컸다”며 “이번 상승장마저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빚을 더 늘려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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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처음으로 4200선을 돌파하자 개인투자자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이달 10일 신용대출 잔액(한도대출 포함)은 105조7886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104조7330억원)과 비교하면 1조556억원 급증했다. 이미 지난달 증가 폭(9251억원)을 넘어섰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규제에 주택 관련 대출 증가세는 꺾였는데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 등 신용대출 잔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빚내서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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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빚투’ 지표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7일 기준 26조216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5일 기준 4년2개월 만에 직전 고점(25조6540억원)을 넘어선 뒤 사흘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일반적으로 주가 상승 기대가 클수록 신용 잔고는 불어난다. 문제는 증시가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빚투족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코스피가 4000 시대를 연 뒤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3~10일) 코스피 하루 변동률은 2.54%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최고 수준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 진입했던 4월(2.07%)은 물론 코스피가 처음으로 4000선을 뚫었던 지난달(1.33%)보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개인 매수세엔 불이 붙었다. 이달 첫째 주(3~7일)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7조2979억원어치를 팔아치운 반면, 개인은 이 물량을 받아내며 7조5137억원을 순매수했다.

코로나19 당시 자산 가격이 급등하며 퍼졌던 ‘포모(FOMO·자기만 소외되는 두려움) 증후군’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정호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히 최근 집값 급등으로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경고등도 켜졌다.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위탁매매 미수금이 늘고 있다. 위탁매매 미수금(잔액)은 이달 7일 1조1787억원(금투협 자료)으로 올해 들어 최대다. 미수금을 갚지 못한 투자자는 반대매매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반대매매란 주가가 급격히 내려갈 때 투자자가 추가 증거금을 납입하지 못하면 증권사들이 강제로 주식을 팔아 대출(채권) 회수에 나서는 것이다. 실제 지난 7일 증권사의 반대매매 규모는 380억원으로 지난해 8월 6일(440억원) 이후 가장 많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시가 급하게 오른 만큼 주가 조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반대매매를 당하면 주식을 모두 팔아도 빌린 돈을 못 갚는 깡통계좌가 될 수 있으니 신중히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정책 의지나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견조한 점을 고려할 때 가파른 조정 국면이 나타나진 않겠지만 적어도 여유자금으로 장기투자하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과도한 빚투’는 개인뿐 아니라 국내 증시에도 부담이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신용융자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와 자본재에 쏠렸다”며 “주가 하락에 따른 반대매매로 이들 업종의 주가가 급락할 경우 국내 증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11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0.8% 오른 4106.39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당 원화값은 주간 거래에서 하루 새 달러당 11.9원 급락해(환율은 상승) 1463.3원을 기록했다. 원화와 동조화 경향이 강한 엔화 약세와 수입업체의 달러 매수가 겹치면서다.

염지현·김선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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