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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국방과 무기

    '여자라서 안 돼!' 美 해군 첫 여성 지휘관 임명 취소에 후폭풍 [지구촌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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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병 체력 기준 성별 중립 적용 명령
    "여군 입대 의욕 심각하게 위축시켜"


    한국일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9월 30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해병대 기지 콴티코에서 고위 군 지도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콴티코=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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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분명 능력 있고,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이 한심한 한 남자 때문에 처벌받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한 현역 여성 군인

    미국 보수성향 매체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에 대한 미군 내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가 노골적으로 여성 군인들을 차별하는 '여성 배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취임 초기 자질 논란에 더해 이제는 군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없애려 무리하게 나서면서, 사기 저하와 군 내부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성차별주의자 헤그세스가 이례적으로 해임 결정"



    한국일보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입회식에서 2023년 6월 29일 신입 생도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아나폴리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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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미 해군 여성 장교인 A 대령이 지난 7월 해군 특수전(네이비실) 사령부에 새 지휘관으로 임명될 예정이었다가 임명식을 불과 2주 앞두고 국방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A 대령은 해군 정예부대를 구성하는 고위 직책이자 미 해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실 팀6(SEAL Team6)의 부대 지휘관 직책을 맡은 최초의 여성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동기 중 최고 승진 후보로 선정됐던 A 대령은 이라크 전투 임무 중 급조폭발물(IED) 공격으로 부상당한 후 퍼플 하트 훈장(전투 중 부상하거나 사망한 미군 장병에게 주는 훈장)을 수여받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취소 통보로 20년간 복무해 온 A 대령은 결국 군복을 벗고 퇴임하게 됐습니다.

    군 내 여러 소식통은 이 조치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임명식 초대장이 이미 두 달 전 발송된 상태였고, 취소 통보도 공식적인 절차 없이 단 한 통의 전화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 어떤 문서 기록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죠.

    미 해군 내에선 곧바로 'A 대령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헤그세스 장관이 임명을 철회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한 퇴역 고위직은 A 대령이 갑작스럽게 배제된 이유에 대해 "헤그세스의 성차별적 태도 때문"이라며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여성의 전투병 복무 전체를 폐지하려 할 것이고, 지금은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군 내 여성 4성장군, 2년 만에 4명→0명



    한국일보

    미국 최초의 여성 해병대 신병들이 2021년 4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캠프 펜들턴에서 혹독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샌디에이고=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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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대령의 사례는 현재 헤그세스 장관 체제 아래에서 미군 전체에 퍼지고 있는 '여성 혐오 문화'의 축소판이라고 CNN은 지적했습니다. 헤그세스 장관이 주요 지도부 직위에서 여성 장교들을 축출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는 올 2월 미 해군 최고위 장교이자 합동참모본부 내 최초의 여성 해군참모총장이었던 리사 프란케티 해군작전사령관을 해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2년 전 4명이었던 미군 최고 계급인 4성 장군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취임 전부터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가진 인물로 평가됐습니다. 그는 군 지도부의 여성들을 반복적으로 폄하하곤 했는데요. 취임 후에는 수십 년간 미군 내 여성 자문 그룹이었던 '군 복무 여성에 관한 국방 자문 위원회'를 해체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군복을 입은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범 사례를 권고하고, 여군에게 맞는 방탄복 확보와 적절한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해 왔습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해 펴낸 군 문화 관련 저서에선 "군대의 성별 통합은 현대 사회가 전쟁의 목적에 대해 느끼는 혼란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는 어머니가 필요하다. 하지만 군대 안에서는, 특히 전투 부대에서는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여성은 전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로 축소해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겁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 같은 인식을 지난 9월 30일 전 세계에 나가 있던 미군 지휘관 모두를 소집한 자리에서 확실하게 공표했습니다. 그는 당시 "미군은 이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 정책을 끝냈다"며 군 진급 시 체력 기준을 강화하고, 여성에게도 높아진 남성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여성 군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한 여성 공군 장교는 "헤그세스의 언행이 내가 군에서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며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여군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삭제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여성 군인 유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 협회(IAVA)의 최고경영자(CEO)이자 해병대 출신인 카이 헌터 박사는 "여성들은 이제 군대에서 자신들의 자리가 없다고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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