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의 반값 여행 이용자들이 한옥 숙박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진군 제공 |
이상명 |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얼마 전, 전남 강진을 다녀왔다. 조금은 먼 남도의 끝자락이지만, 관광객이 강진에서 쓴 여행 경비의 절반을 지역화폐로 되돌려준다는 ‘반값여행’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현금성 지원에 회의적인 필자로서는 그 성공의 이유들이 자못 궁금했다. 막상 가보니 단순한 보조금 정책이 아니라 돈이 지역에 머무는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한 실험이었다.
돈은 돌아야 돈이다. 그것이 바로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승수 효과’(지출보다 더 많은 수요 창출)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예산을 풀어도 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면 남는 게 없다. 강진의 실험은 그 단순한 원리를 정확히 겨냥했다. 강진의 숙박시설, 식당 등에서 사용한 영수증 사진을 누리집에 올리면 지역화폐로 돌려준다. 지역 안에서 돈이 한 바퀴 더 돌게 하는 구조, 즉 순환형 경제 설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현금 살포가 눈송이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 ‘돈이 지역 내에서 돌며 생태계를 이루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이는 ‘가치 사슬의 지역화’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지역을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생산–유통–소비의 연결고리를 내부에서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쓰는 돈이 다시 지역의 농산물 생산자, 소상공인, 숙박업자에게 돌아가고, 그들의 소득이 다시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지난해 강진을 찾은 관광객은 43만명 늘었고, 지역 내 소비는 70억원을 넘어섰다. 농특산물 쇼핑몰 ‘초록믿음강진’의 매출은 1억원에서 28억원으로 뛰었다. 투입 예산 22억원이 생산유발 240억원, 부가가치 100억원으로 이어진 구조적 파급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 정책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이유는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돈이 머무를 수 있는 구조적 장치인 지역화폐 정산 시스템이 있었다. 둘째, 지원금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직접 닿으며 정책 실수혜자의 체감 효과가 뚜렷했다. 셋째, 행정의 신뢰와 시민의 공감으로 정책의 ‘경제 논리’가 민생의 ‘생활 감각’과 맞닿아 있었다. 필자에게는 이 지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흔히 국가 정책을 ‘거시 경제의 조율’로만 보지만, 진짜 경제는 이런 미시적 현장에서 움직인다. 강진의 실험은 중앙정부가 추구하는 ‘지역 중심 내수 활성화’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국가 경제정책이 지향하는 가치(지역에서 돈이 돌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물론 “관광객 퍼주기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지자체들의 등장으로 “지속 가능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경제의 기본은 소비와 순환이다. 호텔 예약금이 돌고 돌아 지역 상권에 활기를 돌게 한다는 ‘호텔경제학’은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체류형 소비를 유도하고 지역내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 몇가지 제도적 보완이 뒤따른다면 지역소멸과 인구감소라는 현실 속에서 이런 실험은 충분히 의미 있는 대응전략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정책 자금의 원칙도 이제는 보편성보다 성과 중심의 집중성이 필요하다. 잘하는 곳, 증명된 모델에 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결국 경제정책의 본질은 ‘돈이 어떻게 돌게 하느냐’에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수식보다 중요한 건, 돈이 돌면서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강진의 실험은 돈이 머물고, 관계가 생기고, 사람이 찾아오는 선순환을 증명했다. “돈은 돌아야 돈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지역의 작은 실험이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