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무렵 우사 김규식의 정치요람이었던 서울 삼청동의 삼청장 마당에서 찍은 직계 가족사진. 앞줄 왼쪽부터 어머니와 여동생, 할아버지 김규식과 김수옥씨, 할머니 김순애와 오빠, 아버지 김진동. 뒷줄 왼쪽부터 언니, 고모, 삼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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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진 | 시민모임 독립 대표
대통령실이 연말에 청와대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한다. 먼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용산 대통령실 사용 종료와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를 환영한다. 아울러 이 기회에 이재명 대통령에게 중요한 역사 문화사업 하나를 요청한다. 우사 김규식 선생의 삼청장을 복원해달라는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한 김규식은 1918년 중국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과 신한청년당을 창설하고 1919년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에 참가할 대표가 된다. 1919년 4월에는 파리 현지에서 임시정부 외무총장으로 선임되었다.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한 김규식은 해방 이후에는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벌였다. 여운형 암살 후에는 김구와 함께 남북협상을 추진했다. 일평생 자신의 정치 행보를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통합으로 일관했다. 한국 근현대사에 큰 자취를 남긴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그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145-6번지로 비정되는 삼청장은 김규식의 개인 사저였다. 그는 1945년 12월 귀국 후 1950년 납북될 때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1948년 김구와 함께 남북협상을 준비하며 김일성·김두봉에게 공동 서신을 보낸 장소이기도 하다. 삼청장은 이승만의 이화장, 김구의 경교장과 더불어 해방 정국의 중심이었던 3대 요람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김규식의 업적은 평가절하당했고, 삼청장 역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삼청장 터는 청와대 인근 ‘안가’로 전용되어 일반의 접근이 차단되었고, 대통령 경호처 소유로 바뀌었다. 12·3 윤석열 내란에서 ‘계엄 아지트’로 이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사의 굴곡이 집약된 곳이다.
김수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김규식의 손녀다. 김수옥 회장과 연구자들,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삼청장 복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장소를 독립운동과 민족통합 정신을 되새기는 역사교육 공간으로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 정권들부터 꾸준히 시도된 삼청장 복원운동은 대통령 경호처의 기득권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삼청장 복원은 근현대사의 한 거인이 살았던 옛집을 되살리는 일을 넘어선다. 독립운동사의 공백을 메우고 정치사에서 빛났던 책임과 통합의 정치를 복권하는 사업이다. 한국 현대사 기억의 복원이다. 김규식 선생의 삼청장 복원은 대통령 청와대 복귀에 의미를 더하는,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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