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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청년으로서 노동자로서 계속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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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열여덟 살 때부터 노동 현장의 모순과 고민을 일기로 남겼다. 그가 남긴 7권 분량의 일기는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바탕이 됐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글을 기억하기 위해 전태일재단과 경향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전태일문학상은 올해 33회째를 맞았다.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대중 공모 부문을 에세이 단일 장르로 한정했다. 전태일문학상의 정신이 전태일의 일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누구나 자신의 삶의 현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문학 속에서 전태일 정신을 구현하는 기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전태일작가상’을 신설했다.

    올해 수상자로는 에세이 부문 최우수상에 ‘우편화물차량 운전기사가 되기까지’ 외 1편의 공창덕씨, 우수상에 ‘언덕 위의 선생님’ 외 1편의 정서희씨가 선정됐다. 이 외에도 에세이 부문에서는 강고운·정우석·차헌호·김미정·김현수·윤경림씨 등 6명이 가작을 수상했다. 전태일작가상에는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쓴 김기태 작가가 선정됐다. 에세이 부문 심사는 서고운(소설가)·천현우(작가)·오혜진(평론가)이 맡았다. 전태일작가상은 김건형·김보경·이지은 평론가가 심사했다. 지난달 28일 에세이 부문 수상자 공창덕씨와 정서희씨를, 30일 전태일 작가상수상자 김기태 소설가를 각각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경향신문

    제33회 전태일문학상 에세이 부문 당선자인 공창덕씨(최우수상·왼쪽)와 정서희씨(우수상)가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길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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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부문 우수상 정서희
    ‘언덕 위의 선생님’


    “나이에 비해서는 저도 일을 많이 해봤어요.” 전태일문학상 에세이 부문 우수상 수상자 정서희씨(21)에게 노동의 이력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 입학하며 강원 고성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씨는 “입시 논술학원에서 강사도 했고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도 했다. 새벽에 나가서 다음날 아침에야 돌아오는 축제 알바도 했다. 돈 많이 준다는 사람에게 속아서 사이비 종교 단체에도 가봤다”고 말했다.

    정씨에게 우수상의 영광을 준 작품도 그가 겪은 아르바이트 일화다. 닷새 동안 아이들의 여름캠프 인솔 교사로 근무하며 겪은 일을 적었다. “선생님, 이거 하면 얼마 받아요”라고 묻는 아이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근무하지만 시간외수당 같은 것은 포함되지 않는 임금, 이에 업체에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동료 인솔 교사들, 그리고 “에휴, 어린 학생들이 돈에 미쳐서는”이라고 말하는 업체 사람까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씨가 겪은 마음속 갈등이 녹아 있다.

    심사위원단은 정씨의 글에 대해 “작품에 불합리 속에서도 내 노동에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 내 노동을 잘 수행하려는 마음이 짓밟히는 현실이 몇번이고 교차한다”며 “일한 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면 유난 떨기로 치부하는, 청년들이 처한 현재 노동 현실 전반을 관통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단은 최우수상과 우수상 수상작 모두 “비정규직, 초단기 일자리 혹은 플랫폼 노동처럼, 불안전해진 토대에서 이루어지는 액화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액화노동은 법적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노동을 의미한다. 시간, 공간, 고용 관계 등 표준적인 근로조건이 녹아내린 상태라는 뜻이다.

    정씨는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노동 현장에서 인물들이 겪는 부조리를 비롯해 자신이 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그렸다. 그는 현재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정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경험은 꼭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인솔 교사인 대학생들과 사측이 계속 임금 협상을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것이 허무했다”고 말했다. 그때의 경험을 정씨는 에세이에 적었다.

    “모두가 지쳐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는 과열된 현장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여기서 가장 나쁜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이것저것 해봤지만, 정규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청년이 머무는 노동시장의 현실은 늘 조금씩 나빴다. 그는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논술학원에서는 학생들의 입시를 얼마나 잘 이끌었나보다 아르바이트하는 선생님들의 대학 이름을 기준으로 임금을 차별했다”고 말했다.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고 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가 스물두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며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 또 많은 일을 하겠지만,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가 전태일이라는 이름 앞에 할 수 있는 건 청년으로서 노동자로서 계속 쓰고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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