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가 가라앉고 경기가 살아나던 2014~2019년, 코로나19 후폭풍이 잦아들었던 2022~2024년. 이 두 시기 고위험기업은 퇴출되고 정상기업이 빈자리를 채웠다면 국내투자는 각각 3.3%, 2.8% 늘었을 것으로 한은은 추정했다. 국내총생산(GDP) 수준도 2014~2019년에 0.5%, 2022~2024년엔 0.4%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은은 약 12만여 개 외감·비외감 기업의 재무 정보와 퇴출 여부를 포함하는 기업패널데이터를 활용해 이같이 분석했다. 이 중 투기등급 회사채의 1년 내 부도 확률(5%)을 넘어서는 재무 상태의 기업을 퇴출 고위험기업으로 분류했다.
2014~2019년 사이, 퇴출 고위험기업의 비중은 전체의 4%로 추정됐다. 하지만 실제 퇴출된 기업은 절반 수준(2%)에 그쳤다. 코로나19 이후인 2022~2024년에도 퇴출 고위험기업 비중이 3.8%로 비슷했지만, 실제 정리된 기업은 0.4%에 불과했다.
위기 때마다 정부의 금융지원과 정책자금이 한계기업에 흘러가며 구조조정이 지연됐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선 경제위기 때 폐업률이 늘어나며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빠르게 교체된 반면, 한국은 오히려 퇴출이 더디거나 줄었다. 결국 연 0.4~0.5% 정도 GDP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명목 GDP(2556조8574억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0조원 정도의 성장 기회를 놓친 셈이다.
한은 연구팀이 외부감사 대상 2200여 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상위 0.1%(약 2~3개사)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투자 흐름을 그대로 유지한 반면, 나머지 대부분의 기업에선 투자가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한은은 투자 위축의 원인이 유동성 부족이나 담보 한계 등 금융 제약보다는 수익성 저하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한은의 연구 결과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립 아기옹과 피터 하윗의 ‘창조적 파괴’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파괴’가 빠진 비정상적인 상태가 유지되며 구조적인 저성장이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부유신 한은 조사총괄팀 과장은 “개별 기업의 보호보다는 산업의 생태계 보호에 중점을 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park.yu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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