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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기고] 관객 몰리는데, 방탄유리 없는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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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반달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문화유산 수난 시대다. 세계 곳곳에서 종교, 이념, 환경을 빙자해 미술품과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이 빈발하고 있다. 최근 넷플리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열기로 굿즈를 사려는 인파가 몰려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객이 두 배로 늘었다는 뉴스에 기쁘기도 하지만 문화유산의 안전 위험이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필자는 반가사유상 특별전이 열릴 때마다 신비한 천년의 미소를 띠고 깊은 사색에 빠진 미륵보살과 침묵의 대화를 나누며 명상과 사유에 빠지곤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1년 개설한 '사유의 방'에 한국 불교 미술의 정수인 반가사유상 국보 2점을 전시 중인데, 한 해에 1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쇄도하고 있다. 3년간의 특별기획전이 끝났는데도 지난해 말 상설전시로 연장했다. 무모한 포퓰리즘 전시행정이 아닌가?

    사유의 방에 방탄유리 없이 반가사유상은 맨몸으로 매일 방문하는 수천 명의 관람객에 의해 빙 둘러싸여 있다. 반가사유상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관람객에게 전방위에서 수 초 안에 흉기로 테러당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매년 밀폐된 사유의 방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내뱉는 탄산가스와 기침, 재채기의 침방울이 공중에 퍼진다. 이에 장기간 노출돼 금동제 미륵불상이 오염·부식될 위험에도 과학적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이제는 반가사유상을 좀 쉬게 하거나 항온·항습 장치를 갖춘 원통형 방화유리벽 안에 안치하고 공항 수준으로 안전 검색을 강화하기 바란다. 1400년 된 반가사유상을 1000년 후 세대에 보존 전승해야 한다.

    1994년 한국 정부 초청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현대일본도자기·공예전에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유족 50여 명이 난입해 일본 인간 국보의 도자기와 공예품 수십 점을 파괴하는 반문화적 사건이 벌어졌다. 안전 소홀로 빚어진 재앙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의 방화 소실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문화재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이 충분한 안전 대책 없이 숭례문을 시민에게 개방해 일어난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의 업보인 것 같아 안타깝다. 방화범이 토지 보상에 불만을 표하기 위해 경비원도 없는 숭례문에 올라가 방화를 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600년 왕도 정문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안전을 무시한 전시행정의 비극을 보고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2018년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누전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잉카와 마야 문화유산, 자연사 유물 2000만점 중 90%가 소실되고 인디오 역사의 비밀 열쇠라는 1만2000년 전 '루지아' 여성 유골도 불탔다. 정부의 문화재 예산이 대폭 삭감돼 유물 관리가 방치된 결과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간 500만 관람객 시대에 충분한 안전 예산 확보와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박물관의 존재 이유는 전시 교육에도 있지만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 전승이 중요하다. 문화유산 전도사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안전 소홀 전시행정의 유혹에서 벗어나 문화유산 지킴이 수장으로서 박물관 기본행정에 충실하여 후세대에게 안전하게 문화유산을 전승하기 바란다.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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