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호랭떡집’에는 저승에서도 떡을 팔려는 호랭이가 나온다. 지옥과 염라대왕이 나오고 요괴들이 등장하여 그림책의 무대를 저승까지 확장하고, 자유로운 라인 드로잉은 유머와 발랄한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짜임새 있는 서사와 밀도 높은 화면 연출이 몰입도를 높이는데, 호랭이의 지옥의 수난 부분에서 저절로 읽는 속도가 빨라짐을 느낀다.
이것은 만화적 언어를 끌어들여 서사의 흐름과 리듬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작가의 연출력에 기인한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가를 꿈꿨다는 서현 작가는 그림책에 만화적 방식을 적극 도입해 왔다. ‘호랭떡집’에서도 만화 형식인 칸을 사용하여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고,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조절한다. 만화가 작가의 고유한 서사 전개 방식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 책뿐만이 아니라 최근 그림책에는 만화나 그래픽노블 형식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칸이나 말풍선 등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캐릭터의 표현이나 감정들을 극대화하거나 과장해서 표현한다. 무엇보다 만화적 형식을 도입하는 것은 압축적인 표현 방식이나 간결함을 선호하는 기존 그림책에 비해 서사를 디테일하게 쪼개서 보여주거나, 여러 상황이나 서사를 덧붙여 풍부하게 보여주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등장하는 젊은 작가들이 이미 만화에 익숙하고, 독자들 역시 만화를 선호하는 세대라는 점이 이러한 그림책의 만화적 경향을 가속화한다.
이것은 최근 국제적인 흐름과도 일치한다. 볼로냐 라가치상 주최 측은 ‘코믹스’ 부문을 추가하면서, ‘만화와 그래픽노블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함에 따라 이 부문을 신설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변화하는 아동 출판 분야에서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고 인정하려는 의지’라고 밝혔다. (2021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공식 보도자료 참조) ‘호랭떡집’은 24년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부문 ‘얼리 리더 스페셜 멘션’ 수상작이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혼동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원주의 한 그림책 활동가는 그림책인지 만화책인지 혼동되는 책들이 곧잘 그림책 영역에 포함되어 혼란스러웠다면서, 최근에는 이것을 아예 보편적인 흐름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림책에 만화와 그래픽노블이 포함되면서 이들 사이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현 작가는 “어딘가에 확실히 속해 있는 게 편안하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저는 그(밖에 있는)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며 “만화는 만화다움의 재미가 있고, 아주 고전적인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재미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이게 막 섞였을 때도 되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그림이라는 언어로 모두 다 함께 시작한 이야기들인데 이런 것들이 서로 넘나드는 것에 대해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최근 그림책은 형식적인 차원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 그림책이 만화나 그래픽노블과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그림책이란 장르의 모호성보다는 그림책의 확장성에 더 주목할 일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가와 독자의 등장이 있다.
조은숙 그림책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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