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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36.5˚C] 화성 연쇄살인 불법 수사 피해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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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일보

    '이춘재 연쇄살인' 누명을 쓴 고 윤동일씨의 친형 윤동기씨가 3일 경기 화성시 진안동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일씨는 지난달 30일 재심에서 사건 발생 35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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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말 열아홉 나이의 윤동일씨는 영문도 모른 채 형사들에게 강제 연행됐다. 그의 형은 동생 행방을 수소문하다 텔레비전에서 혈육을 단번에 알아봤다. 화성 연쇄살인 9차 사건 용의자란 자막이 깔렸다. 엉성한 모자이크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영락없는 동생이었다. 면회에서 만난 동생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외진 곳에 불려 다니며 포대를 쓴 채 두들겨 맞은 것이었다. 그렇게 윤씨는 강간살인 등 10여 건의 자백을 강요당했다.

    윤씨는 연쇄 살인범 검거 성과에 눈먼 경찰의 희생양이었다. 경찰이 9차 사건 자백을 받으려 엉뚱한 사건으로 엮은 강제추행치상죄로 수개월을 옥살이하다가 암 판정을 받고 만 26세에 가족 곁을 떠났다. 형 동기씨는 동생의 낙인인 강제추행치상 사건 재심을 청구해 사건 발생 35년 만인 지난달 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가를 상대로 낸 5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 재판도 다음 달 16일 다시 열리게 됐다. 2019년 이춘재가 9차 사건 진범으로 밝혀지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경찰 불법 행위 판단이 나오면서 삶이 완전히 무너진 일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길이 열린 셈이다.

    사실 이춘재 사건 수사 과정에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은 수두룩하다. 윤씨나 화성 8차 사건 누명을 재심에서 벗은 윤성여씨만이 아니다. 진실화해위가 2022년 12월 낸 연쇄살인사건 수사 피해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문을 보면, 윤씨처럼 불법수사로 짓밟힌 피해자는 20여 명에 달한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에도 성과를 못 낸 경찰은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와 장애인 등을 영장 없이 연행했다. 잠 안 재우기와 고문 협박, 폭언 등 갖은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형사들은 당시 고교생 강모군에게 "순순히 불라"며 얼굴을 난타했다. 열아홉 박모씨를 별건으로 구속하고 얼굴에 수건을 씌워 짬뽕을 붓기도 했다. 당시 38세 차모씨는 이춘재가 저지른 청주 살인 용의자로 추궁당한 뒤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다 달리는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피해자 측 상당수가 경찰의 불법 행위에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 등의 권리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음 달이면 진실화해위가 경찰이 저지른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진술 조서 허위 작성, 증거도 없이 용의자를 언론에 계속 노출한 행위, 혐의를 벗은 용의자 동향 감시 등을 밝힌 지 꼭 3년이 된다. 공적 결정이 나온 뒤로 3년이 지나 대응하면 자칫 청구권 소멸 시효가 쟁점이 돼 주저앉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피해자들이 부디 마땅한 권리를 챙겨서 작은 위로라도 받았으면 한다. 그때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할 리도 없을 듯하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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