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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기고] 세계 질병 퇴치할 국제기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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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한 아이를 떠올려보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단은 늦고 치료는 닿지 않았다. 2000년대 초 설립된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Global Fund·글로벌펀드)은 당시 인류가 직면한 보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했다. 2001년 약 30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했고, 이 중 58만명은 어린이였다. 매년 수십만 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결핵에 감염됐다. 이후 글로벌펀드는 연간 최대 50억달러를 모금해 2002년 이후 지금까지 7000만명 이상의 생명을 구하고 세 질병의 사망률을 63% 감소시켰다. 현지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해 각국의 보건 체계를 강화하고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넓혔다.

    그러나 이 성취는 새로운 감염병과 국제 원조 감소로 다시 위기에 놓여 있다. 올해 11월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글로벌펀드 제8차 재원확충회의를 공동 주최한다. 이는 기부국과 수원국이 공동 책임과 협력을 통해 공평한 파트너십을 재정립할 중요한 계기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과 혁신, 그리고 투자의 재점화가 필요하다. 글로벌펀드는 이러한 노력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 도구이며, 한국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한국은 글로벌펀드와 글로벌 헬스 분야에서 실질적 리더십을 보여왔다. 2022년 제7차 회의에서 공여액을 4배 늘렸고, 결핵 발생률은 2011년 이후 64.5% 감소했다. 한국은 국가 보건안보와 글로벌 보건안보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지속적인 헌신이 국내외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한국은 글로벌펀드의 조달 파트너이기도 하다. 신풍제약, 바이오니아, 에스디바이오센서 등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에 필수 의료 제품을 공급하며 생명을 구하고 있다. 글로벌펀드는 2010~2024년 한국에서 총 8억4900만달러 규모의 제품을 조달했다. 이는 1달러당 최대 19달러의 건강 및 경제 효과를 창출하며 한국 기업의 혁신과 글로벌 보건 대응을 견인한다.

    글로벌펀드는 다자협력의 대표 모델이다. 게이츠재단은 최근 10억달러를 추가 약정했으며, 모금액의 94%가 생명 구호 프로그램에 직접 투입된다. 또한 글로벌펀드는 매년 1억5000만달러를 인공지능(AI) 기술에 투자해 AI 기반 흉부 X선 분석으로 결핵 진단을 3개월에서 5초로 단축하며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글로벌펀드와 대한민국 외교부가 공동 주최한 연례조달포럼도 협력을 강화했다. 이 포럼은 글로벌펀드 조달 시스템을 신규 공급 업체에 소개하고 한국 기업의 기술과 제품을 세계에 선보이는 플랫폼이다.

    영국은 글로벌펀드 창립 멤버이자 세 번째 규모의 공여국으로 지금까지 55억파운드 이상을 투자했고, 올해 신규 공여액은 8억5000만파운드다. 한국이 제7차 회의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보건 협력의 모범이 됐다. 글로벌펀드가 충분히 지원된다면 2027~2029년 최대 2300만명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다. 한국의 공약은 글로벌 보건의 리더이자 세 질환 종식의 핵심 동력임을 분명히 할 것이다.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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