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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미국의 '프렌드 쇼어링' 전략에서 한국이 최적 국가인 이유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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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로 기술패권 강화하려는 미국
    한국, 미국 전략 전개의 최적지
    대미 협력, 국익으로 활용해야


    한국일보

    그래픽=변한나·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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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기 행정부 출범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지능(AI) 리더십 장벽 제거'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6개월 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서 'AI 행동 계획'이라는 전략으로 진화했다. 트럼프 2기의 미국의 AI 전략은 기술패권 전략의 성격을 갖는다. 생성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물론, 신경망 가중치와 학습 데이터, 추론용 SLM,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로봇이나 스마트 팩토리, 첨단 바이오산업 등 '제조 AI' 적용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AI를 기술 패권의 핵심으로 설정한다. 이는 1월에 발표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도 궤를 같이 한다.

    미국의 AI 기술패권 전략에 공백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대량 연산을 가속할 수 있는 하드웨어, 즉 반도체다. 엔비디아나 마이크론 같은 미국 회사들은 GPU나 DRAM, HBM 같은 반도체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칩을 만들 수 있는 팹을 미국 본토에서 확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인텔 파운드리 팹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인텔의 공정 경쟁력이 많이 쇠락한 상황이라 미국 내 AI 반도체 제조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소요될 대량의 반도체 수급은 인텔 팹은 물론, 미국 현지에 건설 중인 TSMC나 삼성전자 파운드리 팹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러한 팹들이 완전히 양산 단계에 진입하기까지는 여전히 최소 3~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이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AI 생태계와 기술패권 전략 추구의 차질을 방지하면서도, 대만에 대한 첨단 반도체 생산 공급 의존도를 완화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프렌드 쇼어링의 최적 파트너는 동맹국이면서도 기술 기반이 강력하고, 반도체 공급망의 병목 지점을 점유하면서도, 국가적으로 AI 정책 추진력이 강력한 국가일 것이다.

    현재 이런 조건에 모두 해당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그렇지만 일본에 비해 한국은 특유의 장점이 있다. HBM, DRAM 같은 첨단 메모리반도체 제조는 물론 파운드리와 AI 생태계로 민-관 투자가 강화되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최근 미국 대형 투자회사 블랙록이 한국으로의 AI 사업 대규모 투자 의사를 내비치고, 오픈AI가 한국의 주요 반도체 메이커들과 협력하여 자체 AI 전용 연산 하드웨어와 서버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오픈AI는 최고 성능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최전선에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핵심인 기업이므로, 오픈AI와의 협력은 미국 AI 패권전략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한국을 향한 미국의 AI 협력은 철저히 미국 입장에서의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이다. 그렇지만 한국도 얻을 수 있는 걸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엔비디아 GPU 일변도인 현재 AI 가속기 시장은 점차 학습 및 모델의 다변화에 따라 관련 맞춤형 반도체 수요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첨단 패키징, 공정 장비와 신소재, 그리고 버티컬 AI로 대표되는 제조업 분야에 특화된 에너지 효율적 AI 서버와 클러스터, 그리고 핵심 전력망 및 산업용수 관리 인프라 등은 한국이 선점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국은 AI가 제2의 디지털전환이자 인프라전환이 될 수 있다는 모멘텀을 이용하여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나 '소버린 AI' 같은 국가 반도체 및 AI 정책 및 전략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 협력 분야를 먼저 제시하여, 향후 이어질 무역 협상에서도 협상의 아이템을 더 많이 손에 쥘 수 있다. 미국의 AI 기술 패권 전략은 미국 단독으로는 실현하기 어렵다. 한국이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한국은 그것을 더 기술적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 분야로 발전시키고 한국의 전략 강화에도 활용해야 한다.

    한국일보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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