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7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번역 감옥’ 갇혀 지낸 4년6개월…세계사의 ‘열린 지평’ 풀어내다 [.txt]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류충기 번역가가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자신이 완역해 출간한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 번역본을 소개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학 연구와 서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한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 전권의 우리말 번역본이 완간됐다. 첫 권 ‘세계사의 탄생―전통과 주제와 서술 방식’(2021년 4월, 소와당)이 출간된 지 4년6개월, 원서가 나온 때로부터는 꼭 10년 만이다. ‘케임브리지 세계사’는 201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가 7권 9책으로 발간했다. 주제가 워낙 다양하고 분량이 방대한 까닭에, 번역본은 영어판 각 한권을 둘로 나누어 모두 18권으로 나왔다. 차례와 구성은 원저와 같다.



    대작을 완역한 류충기(55) 번역가를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책을 출판한 소와당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류씨는 인터뷰 당일 오전 고향(경북 안동)에서 상경했다. “어릴 적 조부모가 사시던 고택에서 혼자 지내며 번역에만 몰두했다가 5년 만에 바깥세상에 나와 조금 얼떨떨하다”고 했다.



    그런데 류씨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왼발 장딴지 근육과 후종골(발뒤꿈치뼈)을 잇는 힘줄이 (뼈에서) 떨어지고 염증이 생겼어요. 조금만 많이 걸어도 발뒤꿈치가 퉁퉁 붓고 다음날은 못 걷는데, 다행히 오른발이 아니어서 운전은 할 수 있어요.” 진단 병명은 ‘만성 아킬레스 부착부 건염’. “최근 5년 내내 시골집 서재에서 밤낮없이 번역에만 몰두했는데, 너무 장시간 앉아만 있는 자세도 무리가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이번 번역서 완간은 건강과 맞바꾼 결실인 셈이다.



    한겨레

    류충기 번역가가 4년6개월에 걸쳐 번역한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7책 9권)의 한국어 번역본.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류씨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 완역 이전에도 ‘실크로드 7개의 도시’(2015), ‘고대 지중해 세계사’(2017), ‘폰 글란의 중국경제사’(2019) 등 아홉권의 번역서를 냈다. 애초부터 번역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대학원(서강대 불문학과·석사)까지 마치고 프랑스 유학을 앞두고 있던 1997년, 한국 경제에 외환 위기가 닥쳤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환율이 갑절로 치솟았다.



    가난한 문학도는 공부의 뜻을 잠시 접고 취업을 선택했다. 그렇게 출판계에 발을 내디딘 게 삶의 향방을 바꿨다. “문학사상사에 잠깐 몸담았다가 사계절출판사 인문팀으로 옮겨서 역사서 편집을 맡았어요. 2000년대 초반인데, 마침 역사서 붐이 일었어요. 그때 (출판 기획과 편집을) 많이 배웠고, 책도 여러권 만들었습니다.” ‘아틀라스 세계사 시리즈’,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같은 베스트셀러 책들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출판 편집자가 역사 학술서 출판사를 차리고 전업 번역가가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문명교류학의 지평을 연 정수일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2000년 초 어느 날 (사계절)출판사로 책을 내고 싶다는 전화가 왔는데, 정수일 선생님이셨어요. 그때만 해도 그분이 누군지 잘 몰랐죠. 얼마 뒤 원고지 뭉치를 한 보따리 싸 들고 오셨어요. 8개월가량 (원고 교정과 편집) 작업을 했는데, 내용을 잘 모르니까 하나하나 여쭤보고 댁에도 자주 갔어요. 그렇게 나온 책이 ‘고대문명 교류사’(2001)였습니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우리 것은 좋은 것’, ‘우리도 문화민족’이라는 식의 자국사 재발견과 자긍심 고취에 갇혀 있을 때 정수일 선생님의 저술은 한반도를 넘어 실크로드로 뻗어나가 버리니까,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죠.”



    한겨레

    류충기 번역가가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기 앞서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한국 사회 변혁의 이론적 모델과 전망을 모색하는 책들이 주류였는데, 2000년대 들어 흐름이 바뀌었다. “그 전엔 인문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관련서와 철학책들이 잘 팔렸고 역사책은 뒷전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냉전 종식으로) 마르크스주의가 한풀 죽고 철학도 힘을 잃었잖아요. 인문 독자들이 역사서 분야로 몰렸지요. 마땅한 콘텐츠가 없어 책을 못 낼 정도였고, 좀 깔끔하게 만들면 기본 부수는 쉽게 완판됐습니다.”



    그런 호황이 오래가진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많은 출판사가 “책에 이미지(사진·도판 등)를 많이 넣고 흥미를 끄는 대중서”에서 활로를 찾았는데, 류씨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국내에선 사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와 독자 대중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괴리된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사에 대한 수요가 커졌는데 국내에는 그런 분야의 책을 쓸 전문가가 없는 거죠.” 류씨는 “20세기 인문학은 마르크스주의·심리학·언어학의 토대 위에 있는데, 한국사 연구자 중에 마르크스주의 공부한 분이 드물고 언어학과 심리학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위기였다”고 돌이켰다.



    자연스럽게 외국 역사학계의 저작들, 더 정확히는 ‘새로운 세계사’ 저술의 흐름에 눈이 갔다. “한국사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런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거나 기획해 출간하고픈 열망이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사계절을 퇴사한 류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 통합과정에서 2년간 서예사를 공부한 뒤 2007년 소와당 출판사를 차렸다. ‘소와당’(笑臥堂)이란 명칭은 류씨 가문의 조상에게서 따왔다. “저희 집안 족보에 류의손(柳義孫)이라는 어른이 계십니다. 조선 세종 때 도승지,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셨어요. 소와당은 그분의 당호입니다.”



    한겨레

    류충기 번역가가 고향(경북 안동)의 고택 앞에 선 모습. 류충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와당은 창사 이듬해부터 10여년 동안 국내외 저자들의 역사서 40여종을 펴냈다. 류씨의 첫 번역서 ‘중앙유라시아 세계사’(2014, 공동번역)를 포함해 영어 또는 프랑스어 저작들의 번역서 아홉권도 이때 나왔다.(이 시기 번역자 이름은 본명이 아닌 주민등록 성명 류형식을 썼다.) 그가 직접 번역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지만 곱씹을 만하다. 대학 전공이 프랑스어와 문학이었기 때문에 영어와 프랑스어 텍스트 번역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외국어 역사서를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려면 해당 내용의 역사적 맥락과 저자의 의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마땅한 번역가를 찾고 섭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문 구조와 문법이 다른 외국어 학술서를 번역하는 일이 녹록지는 않았다. 더욱이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는 역사학뿐 아니라 미술사·인류학·고전학·고고학·경제학·언어학·사회학·생물학·지리학·지역학 등 각계의 최고 지성 200명이 저술에 참여했다. 류씨는 해당 분야의 개론 공부, 개념어 숙지, 자료 조사와 맥락 파악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제가 대학원 다닐 때 프랑스인 지도교수님한테 배운 게 있어요. ‘문장에 붙들리지 말고 필자의 심정이 돼보라’는 겁니다.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헤아려서 그 의도를 옮기라는 거예요. 텍스트를 곧이곧대로 직역하면 문화적인 콘텍스트(맥락)가 왜곡될 수 있거든요.”



    한겨레

    류충기 번역가가 고향 경북 안동의 고택 안 서재 ‘기양서당’에 앉아 있다. 이 서재는 오랫동안 동네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쓰였다고 한다. 류충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류씨가 번역에 몰두하면서 출판사 운영은 출판 디자이너 출신 아내(김수미 현 대표)의 몫이 됐다. 세계사 출판의 양대 산맥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와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법론과 시각의 새로운 세계사 시리즈 기획 출판을 진행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새로운 세계사’는 20세기 내내 지속된 유럽 중심주의와 고대-중세-근대의 단선적 시대 구분을 넘어 지구촌 전역과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 ‘인류 보편사’를 추구한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제1권 ‘세계사의 탄생’의 책임편집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개별 공동체나 사회를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교, 연결, 네트워크, 시스템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새로운 세계사”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국가라는 틀과 실증주의라는 규범은 19~20세기 역사학의 특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역사학은 지나치게 유럽에 편중돼 있었다”는 문제의식이 깔렸다. 학계에선 ‘새로운 세계사’를 지구사, 초국사, 국제사, 비교사 같은 용어로 일컬었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빅뱅과 우주의 탄생부터 인류세까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룬 기념비적 저작 ‘시간의 지도: 빅 히스토리 입문’(2018, 원제는 ‘Maps of Time: An Introduction to Big History’)의 저자다.



    새로운 세계사의 관점은 한-일 관계사나 한국 현대사 서술에도 시사점이 크다. 케임브리지 세계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유엔(UN) 체제’로 정의한다. 20세기 전반 제국주의 국가들이 패권 전쟁을 벌이고 식민지들에선 민족해방 독립 투쟁이 치열했다가 전후 세계 체제가 유엔의 질서로 재편됐다는 것이다. 앞서 19세기 독일 역사학자 랑케가 실증주의 역사학을 주창한 것도 후발 제국인 독일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측면이 있고, 일본 학계가 실증주의를 수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는 게 류씨의 설명이다.



    “일제의 쌀 공출이 ‘수출’이냐 ‘수탈’이냐가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경제 정책이 제국주의를 강화했느냐 약화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이든 ‘쌀 수출’이든 모두 제국 시스템의 강화에 복무했어요. 한-일 관계도 유엔 체제 위에 성립된 건데 제국주의와 유엔 체제의 탄생을 빼고 실증주의를 말하면 유사 역사학과 다를 게 없어요.”



    한겨레

    류충기 번역가가 고향 경북 안동의 고택 안 서재 ‘기양서당’에 앉아 있다. . 류충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류씨는 번역자 해제를 쓰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마라톤 하듯이 전권 번역을 끝내고는 탈진한 느낌”이었던데다, “시리즈 기획자가 서문에 출간 취지를 충분히 밝혔는데 번역자가 또 말을 보태는 건 과도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간 번역을 하면서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은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고, 완역 뒤 출판까지 하고 나서는 “아예 생각 스위치를 끄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루 종일 원서와 씨름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얘기를 할 기회는 없었던 거죠. 그렇게 번역을 마치고 출판까지 하고 나서는 완전히 다운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불이 탁 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거 봐,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어’ 하는 기분이랄까요, 하하”.



    류씨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완역의 숨은 조력자를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김좌근씨라는 프리랜서 교정자입니다. 번역을 시작하기 전 딱 한 번 만난 뒤로는 얼굴 한번 못 보고 계속 이메일로만 소통했어요. 원고를 넘기고 나면 한두달 뒤에 의문스러운 것,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질문지가 어김없이 오는데 꼭 숙제 검사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김씨는 책에 나오는 모든 연도를 전수 조사하고, 수많은 등장인물의 인명 표기를 바로잡고, 미심쩍은 번역은 원서의 본문 한 자까지 대조해 알려왔다. “틀린 게 갈수록 줄긴 했지만, 처음엔 책 한권에 대략 150개가 나왔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번역, 출간하기까지 10년은 지난 느낌인데, 돌아보니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더라고요. 그분 아니면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너무 감사하죠.”



    류씨는 지금이라도 옮긴이 후기를 쓴다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사와 세계사의 소통이죠. 한국사가 더 이상 섬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도 그런 토대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참여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