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2026년도 HPV 예산 증액
12세 남아도 HPV 접종 지원 길 열려
최신 9가 아닌 4가 지원에 아쉽단 반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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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에 20만 원씩, 총 3번 맞히면 60만 원이잖아. 비용 부담이 컸는데 둘째라도 혜택을 보게 됐으니 잘됐지 뭐야."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 둘을 키우는 친구가 대화 도중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얘기를 꺼냈습니다. 내년도 질병관리청의 국가예방접종 관련 예산이 증액되면서 남성 청소년도 HPV 예방접종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는 기사를 읽은 모양이었죠.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HPV는 항문암·두경부암·생식기사마귀 등 성별과 관계 없이 남녀 누구에게나 감염될 수 있습니다. 주로 감염인과의 성적 접촉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HPV 관련 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선 성경험 전에 남녀 모두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표피 감염이 많다보니 항체 형성이 어려워 예방접종이 더욱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죠.
국내에서 허가 받은 HPV 백신은 서바릭스(2가)와 가다실(4가), 가다실9(9가) 등 3종입니다. 각각이 표적으로 삼는 바이러스 유형의 개수에 따라 가수가 달라지죠. 2가 백신은 자궁경부암의 약 70%, 항문암의 90%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16·18형만을, 4가는 생식기 사마귀의 90% 이상을 유발하는 6·11형을 추가로 포함합니다. 9가는 기존 4가 백신에 5가지 혈청형(31·33·45·52·58형)이 추가돼 현존하는 HPV 백신 중 가장 많은 바이러스 유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들 백신 모두 9~14세 연령은 2회 접종만으로 3회 접종과 동등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2번만 맞으면 되지만, 15세부턴 3회 접종이 기본으로 권장되죠.
그동안 질병관리청은 12~17세 여성청소년과 18~26세 저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 2가와 4가 HPV 백신 접종 비용을 전액 지원해 왔습니다. 접종 가격이 가장 비싼 '가다실9’의 경우 특정 지자체를 제외하곤 접종 비용이 전혀 지원되질 않아, 특히 10대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부담이 컸죠. 딸이라면 포함된 혈청형이 조금 적어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무료 백신을 맞히면 되는데, 아들은 실비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접종을 하려면 40만~60만 원이 들었으니까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남성 청소년 가운데 HPV 백신을 접종한 비율은 0.9%(2만2498건)에 그쳤습니다. 그 중 83.2%(1만8713건)가 9가, 16.2%(3655건)가 4가 백신으로 확인됐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남성 청소년에게도 HPV 백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대통령선거 때마다 주요 후보들이 HPV 백신 남녀 무료 접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예산 문제로 발목이 잡혔는데, 내년부턴 12세 남성도 HPV 무료접종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니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9가가 아닌 4가 HPV 백신 지원이 결정된 데 대해선 아쉬움도 남습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9개국은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을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에선 4가 백신을 더이상 사용하지도 않거든요. 대한부인종양학회는 지난해 개정한 권고안에서 기존 2가 또는 4가 HPV 백신 접종자도 추가적 아형 감염을 낮추기 위해 9가 백신 재접종을 권고한다"고 밝혔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HPV 예방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9가 백신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 질병청의 국가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 설정 및 중장기 계획 수립 연구에서도 '12세 여아 9가 백신 전환'과 '12세 여아·남아 동시 9가 도입'의 우선순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정작 내년도 예산엔 최하위권이었던 '12세 남아 4가 백신 도입'이 반영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철 지난 백신으로 생색내는 정책'이란 쓴소리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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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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