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코인 송금까지 강요해 약 11억원 갈취
경찰 "계좌 명의자 2명 등 송치 예정...해외 공조 진행 중"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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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40대가 ‘검찰·금융감독원 합동 수사’라는 말에 갇혀 한 달 가까이 일상생활을 통제당하며 11억여원을 뜯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모텔 ‘셀프 감금’부터 기상·취침 보고까지 강요받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전 재산을 잃은 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일부 조직원을 검거한 경찰은 전체 조직을 뒤쫓고 있다.
7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씨는 지난 9월 초 ‘검찰 사무관’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뜬금없는 사건조회 링크를 문자로 받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검사’를 사칭한 피싱 조직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들은 “당신의 계좌가 성매매 조직의 불법 자금에 쓰였다”며 A씨를 범죄자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금감원과 함께 수사 중”이라며 계좌 정보를 요구하고 압박했다.
피싱 조직은 A씨가 사실 확인이나 대응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들은 “전화를 끊지 말라”며 A씨에게 새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 뒤 모텔에서 ‘셀프 감금’할 것을 지시했다. 전형적인 피싱으로 알려진 수법이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 A씨는 이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모텔로 들어선 A씨에게 피싱 조직은 금융조회 앱이라며 원격조정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혹시라도 A씨의 의심에 대비해 경찰, 대검찰청을 가장한 전화번호로 통화를 하는 등 실제 상황인 것처럼 꾸미는 치밀함도 보였다.
A씨가 건넨 자료의 계좌 목록 일부가 누락됐다며 ‘증거 은닉’으로 구속될 수 있다는 협박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검찰에 이어 금융감독원 과장이라는 사칭범도 등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신원보증을 하면 약식으로 처리될 수 있다”며 ‘국가안전감시계좌’라는 가짜 제도를 내세워 송금을 요구했다.
조직의 통제는 계속됐다. 이후에도 기상·취침 시간 보고, 텔레그램 영상통화,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 “인터넷 검색 금지” 등 A씨의 생활을 거의 감시 수준으로 조종했다.
A씨는 피싱 조직의 지시에 따라 한 달 동안 30차례 넘게 8억9000여만원의 돈을 송금했다. 여기에는 A씨의 은행 대출과 카드 현금서비스 금액, 가상자산까지 포함됐다. 피싱 조직은 “피해자로 확인되면 돈을 돌려주겠다”는 말로 A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A씨의 모든 것을 빼앗고는 그대로 잠적했다. 뒤늦게 피해 사실을 파악한 A씨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고소장에서 "자가 마련과 부모님 노후를 위해 모은 돈을 한 달 동안 매일 갈취당하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고 우울 증세까지 왔다. 범죄자 엄벌과 피해 회복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금감원 주무관 역할을 하며 피해 금액을 자신들의 계좌로 송금 받은 2명을 붙잡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전송한 가상자산이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 사실을 확인해 국제 공조를 요청했다"며 "나머지 피싱 조직원들도 붙잡아 엄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2.8%, 피해액은 22.9% 감소했다. 11월 발생 건수와 피해액도 각각 26.7%, 35.0% 축소됐다.
이는 범정부 전기통신사기 통합대응단 출범 이전인 9월까지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전년 대비 28.0%, 피해액은 90.7% 각각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통합대응단은 지난 8월 정부가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통신·금융·수사 분야를 아우르는 범정부 합동 대응 조직이다. 경찰청을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이 참여하며, 9월 29일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정부 보이스피싱 종합대책에 따른 적극적인 대응이 소기의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며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을 중심으로 연말까지 보이스피싱 범죄 대응역량을 총동원해 감소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박성현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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